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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자선사업 / 이재성

등록 2015-05-25 18:51

‘2014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윈터 슬립>은 상속받은 재산으로 먹고사는 한 지식인의 위선을 폭로한다. 그의 집사 겸 비서가 월세 밀린 세입자의 집에 사람을 보내 세입자를 폭행하고 티브이를 압류했는데도 그는 아랫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모른 척한다. 하지만 신문에 실린 자신의 칼럼에 감동했다며 기부를 요청하는 편지에는 무척 마음을 쓴다. 이런 위선적인 남편을 싫어하는 젊고 아름다운 부인은 남편이 자선사업에 쓰라고 준 거액을 들고 남편 몰래 세입자를 찾아간다. 그러나 세입자가 지폐를 벽난로에 던지자 부인은 엉엉 울어버린다. 자선은 베푸는 자의 우월감을 확인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영화는 차갑게 묘사한다.

미국의 석유재벌 록펠러는 과오를 덮으려 자선사업을 벌인 경우다. 그는 매우 인색한 사람이었다. 구걸하는 거지를 벌레 쳐다보듯 노려보는 사진은 그의 인간성을 폭로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단골 메뉴로 쓰였다. 록펠러는 뇌물과 리베이트, 협잡을 동원해 경쟁사들을 무력화시켰고, 그 결과 미국 전체 석유 공급량의 90%를 차지했다. 1911년 반독점법 위반 판결을 받고 회사가 쪼개진 뒤 록펠러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록펠러 재단을 세웠다. 자선사업 와중에도 악행은 계속됐다. 1914년 록펠러 소유의 콜로라도 러들로 탄광촌에서 저임금에 항의하는 노동자와 가족을 향해 회사 쪽 경비원들이 기관총을 쏘아 199명이 사망했다. 일명 러들로 학살로 불리는 이 사건은 자본주의 모순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자 록펠러 가문의 수치로 역사에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규모 자선사업은 악행을 덮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세운 청계재단의 장학금 지급액이 5년 만에 반토막이 난 반면, 단기금융상품 투자액은 7배로 늘었다고 한다. 2009년 처음 재단 설립 방침을 밝혔을 때 사람들이 의심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자선사업이 과오를 덮기는커녕 오히려 키운 첫 사례로 기록될 것 같다.

이재성 문화부 책지성팀장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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