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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삼성, 약해진 걸까? / 최우성

등록 2015-06-09 20:03수정 2015-06-30 18:53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깜짝 등장으로 삼성그룹의 미래 구도를 가늠해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드라마’의 스토리라인이 난데없이 흔들리고 있다. 다음달 17일로 예정된 종영일(주주총회)을 앞두고 대반전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아 보이나, 드라마 중반의 흡인력은 꽤나 세졌다. 엘리엇은 9일 “합병안이 명백히 공정하지 않고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며 불법적이라고 믿는 데 변함이 없다”며 주주총회결의금지 가처분소송을 낼 뜻을 밝혔다.

지난 4일 엘리엇이 두 회사의 합병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기 전까지, 드라마는 삼성 쪽이 의도한 각본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엘리엇의 등장 이후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엘리엇은 국민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자들을 상대로 공동전선을 펼 것을 제안했고, 이에 맞서 삼성 쪽은 분주히 표 단속에 나서고 있다.

누가 뭐래도 논란의 불씨를 키운 건 합병 결정의 진짜 의도라 보는 게 타당하다. 두 회사 합병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단칼에 단순하게 바꾼다. 총수 일가가 30% 이상의 지분을 거머쥔 삼성물산(통합법인)이 양대 축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각각 지배하는 그림이다. 지주회사 전환과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도 총수 일가,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장악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묘수다. 이번 합병 결정을 일제히 3세 승계 작업과 관련지어 바라보는 이유다.

이쯤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가시지 않는다. 삼성은 엘리엇과 같은 ‘돌발변수’의 출현 가능성을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솔직히 3세 승계 프로젝트는 그 어떤 사업과도 견주기 힘든 그룹의 핵심 프로젝트였을 게다. 그렇다면 예상 가능한 모든 종류의 시나리오를 몇 번이고 꼼꼼하게 재봤을 텐데. 외국인 투자자의 속성상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다고는 해도, 정황상 엘리엇은 삼성의 레이더망 바깥에 존재했던 것 같다. 야심차게 밀어붙인 3세 승계 프로젝트에서 삼성이 의외의 복병을 만난 건, 속된 말로 낯선 ‘시추에이션’이다. 삼성이 예전 같지 않은걸!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삼성은 ‘먹튀’ 가능성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싶을 게다. 엘리엇의 불량한 의도를 부각시킬수록 돌발변수 등장의 충격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테니까. 우리에겐 2003년 에스케이(SK)와 경영권 다툼을 벌이다가 9000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기고 홀연히 떠난 소버린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비밀은 삼성 내부를 돌아보는 데서 찾아야 할 듯하다.

삼성의 몸집은 과거에 견줄 게 못 된다. 위상도 상상 그 이상이다. 어쩌면 우리보다도 외국인들이 삼성의 행보를 더 주도면밀하게 지켜봤을 게다. 삼성이 추진하는 3세 승계 작업이 펼쳐질 무대는 1987년 이병철 창업주의 타계와 함께 이뤄진 2세 승계 작업 때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시장이다. 위상도 커지고 규모도 커지고, 자연스레 ‘떡고물’도 커졌다. 보는 눈은 많아졌고 또 달라졌다.

최우성 논설위원
최우성 논설위원
이에 비해 삼성의 행보에는 ‘빈틈’이 너무 크다. 합병 뒤 시너지 효과에 대한 고려는 뒷전으로 밀린 채 안정적인 승계 작업에만 매달려 대형 계열사를 합치기로 결정했다. 합병을 결정하는 이사회에선 합병 비율이나 시너지 효과에 대한 논의조차 없었다. 닥치고 수비 축구에선 오히려 상대방에게 공간을 허락하지 않을 수 있다. 과거의 삼성은 그랬다. 하지만 눈이 높아져 공간을 활용하는 작전축구를 펼치면서 종합적인 실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공간을 지배당하기 일쑤다. 상대방 눈엔 빈틈이 너무 확연하다. 어쩌면 삼성은 빈틈없던 과거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무대는 달라졌다.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 길은 체질 개선, 진짜 실력뿐이다.

최우성 논설위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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