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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별기고] 낙원에 모인 늑대들 / 염무웅

등록 2015-06-11 18:24수정 2015-06-11 21:08

독일 휴양지 호텔에서 G7 정상회담이 열렸다. 오바마는 전통 복장의 남독인들 틈에 끼여 앉아 맥주잔을 들어올리고, 메르켈은 정상들 접대에 분주하다. 2차 대전의 당사국들은 자기들이 인류에게 가한 고통의 책임도 잊은 채 세계지배의 새로운 잔칫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은 우리에게는 아주 낯선 지명이다. 남부독일의 중심 도시 뮌헨에서 지방열차로 1시간 20분쯤 가는 시골로, 독일 알프스의 최고봉 추크슈피체를 끼고 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원래 가르미슈와 파르텐키르헨은 각각 독립된 마을이었으나, 1936년 2월 이곳에서 개최된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하나로 합쳐져 지금처럼 긴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해 8월의 베를린 여름올림픽에서와 마찬가지로 히틀러가 개회선언을 했고, 이런 스포츠 쇼의 잇단 개최로 나치 독일은 한껏 정치적 흥행에 성공했다. 그런데 인구 2만6000명의 이 소도시가 다시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정치무대로 떠올랐다. 시내에서 3㎞ 남짓 떨어진 휴양지 엘마우의 호화로운 호텔에서 서방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이 7~8일 이틀 동안 열린 것이다.

눈 덮인 고봉들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병풍처럼 둘러친 녹색의 화원 속으로 활발하게 등장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누이처럼 다정하게 맞아주는 독일 메르켈 총리와 가볍게 포옹을 나눈다. 그러고서 그는 곧장 와이셔츠 바람으로 야외 연설대 앞에 나타나 군중을 향해 “그뤼스 고트”(gr?ß Gott) 하는 바이에른식 인사로 연설을 시작한다. 곁에 섰던 메르켈은 박수를 유도하고 이에 군중은 환성을 지르며 호응한다.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강대국들의 정상회담 막이 열리고 있다기보다 알프스 여름축제의 개시를 알리는 화려한 식전행사가 벌어지는 느낌이다. 행사가 끝나자 오바마는 마치 비어가르텐에라도 들르듯 전통 복장의 남독인들 틈에 끼여 앉아 맥주잔을 들어올리고, 메르켈은 다른 정상들 접대에 분주하다. 오바마의 입은 싱글벙글 시종 귓가에 걸려 있다. 낙원 같은 풍경이 전개되는 것이다.

하지만 낙원 바깥은 전혀 그림이 다르다. 이미 여러 날 전부터 수천명 시위대가 뮌헨 시내에 모여 “세계화 반대” “불평등 반대” “정상회담 반대” 같은 구호를 외치며 기세를 올렸고, 그중 열성분자 수백명은 텐트까지 싸들고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으로 쫓아왔다. 그들은 울긋불긋 깃발을 휘날리며 회담장이 보이는 곳까지 행진하면서 구호를 외친다. 그러나 더 가까이 접근하지는 못한다. 회담장 외곽에는 2천명 이상의 경찰이 방어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윽고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고, 경찰은 힘껏 곤봉을 휘두른다. 그래도 미국이나 한국에서와 같은 심각한 폭력사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위대에게 더 곤란한 일이 생기는데, 저녁이 되자 폭우가 쏟아진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시내 기차역으로 철수하여 역사 안에서 젖은 옷을 널어 말리며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이날의 저항운동은 이렇게 종결되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등 일곱 나라 정상과 유럽연합 의장은 왜 이런 궁벽한 산골에 모였고 그들은 무슨 일을 대표하는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이태째 초청받지 못한 러시아가 만약 캐나다 대신 자리를 함께했다면 이 회담은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들이 종전 70주년을 기념하여 전쟁의 참화를 기억하고 비극의 재발 방지책을 의논하는 그럴듯한 모양새로 비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엔 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존재를 허구화하는 또 다른 중대한 사태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세계대전의 당사국들은 그들 이외의 다른 국가/민족들이 보기에 인류의 나머지 다수에 대한 범죄자들이다. 전쟁하는 나라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전쟁에 참가하지 않은 다른 나라에도 엄청난 피해와 위험을 초래한다. 종전 직후에만 해도 암묵적으로 이런 인식이 모두의 마음속에 있었기에 지구상 대부분의 나라들이 유엔이라는 국제적 연합체의 결성에 동의한 것 아닌가. 그런데 이제 70년이 지나 세상이 달라지자 이 나라들은 과거에 적의 관계였든 동맹의 관계였든 개의치 않고 자기들이 인류에게 가한 고통의 책임도 잊은 채 희희낙락 모여들어 세계지배의 새로운 잔칫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7개국 정상회담의 주최국 독일은 우리나라에서 대단히 이미지가 좋다. 패전 이후 모범적인 민주국가이자 기초가 튼튼한 산업국가로 성장했고 무엇보다 미국 같은 무자비한 경쟁사회가 아니라 고루 잘사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쟁범죄에 대한 끊임없는 사죄와 보상을 통해 이웃 나라들과 우호관계를 맺었고, 이런 공덕이 쌓인 끝에 평화적 통일을 이루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본은 우리에게 반대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중국에서 저지른 난징대학살 같은 명백한 범죄도 아니라고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위안부 문제에서 보듯 우익정부 당국자는 어떻게든 책임 있는 답변을 피하려고만 애를 쓴다. 패전 후 독일이 과거 동프로이센에 속했던 영토를 러시아와 폴란드에 대폭 양보했던 것에 비하면 바다 한가운데 놓인 바위섬 독도를 가지고 줄기차게 까탈을 부리는 일본은 과연 야박하기 짝이 없는 듯하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독일은 기후변화에 대처하여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자는 보편적 의제의 채택에 앞장선 반면, 일본은 북한 인권 문제나 핵 문제 같은 ‘속 보이는’ 내용을 결의안에 포함시키는 데 주력하여 지역안정을 휘젓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국으로서는 일본이 독일에 비할 수 없이 중요한 나라다. 다른 복잡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수천 년 은원(恩怨)으로 맺어진 부동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일본과 적절하게 선린관계를 맺지 않으면 우리에게 평화로운 미래가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 독일과 일본이 현대사에서 때로 다른 길을 걷는 것에 대해서도 그 나라들 입장에서 생각하여 균형 잡힌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다.

2차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전통적 강국들이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소련만이 유일한 강대국으로 부상했고, 이런 사태를 용납할 수 없었던 미국은 서독의 부흥과 서유럽의 통합을 통해 소련의 봉쇄를 시도했다. 얼마 전 작고한 리하르트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이 시사했듯 독일의 통일은 이런 과정에 연관된 유럽 통합의 일환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러시아 영역을 향한 서방세력의 거대한 일보전진이었다. 오늘의 우크라이나 사태는 바로 그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독일이 이웃 나라에 영토를 양보하고 사죄를 거듭한 것은 그것이 그들에게 장기적 관점에서 이익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1세기에 걸친 국가 진로가 동아시아로부터의 이탈, 서방세계로의 진입이었다. 전후 그 노선은 대미 종속을 통해 도리어 더 확실해졌다고 할 수 있다. 한때 ‘동아시아 공동의 집’이라는 구상이 나오고 ‘친미입아’(親美入亞)라는 슬로건도 등장하면서 민주당 정권이 성립하여 기대를 모았으나, 우리가 알고 있듯 미국 헤게모니 체제는 일본이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의 일부가 되는 사태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요컨대 일본은 예상할 수 있는 상당한 미래까지 서방세력의 대표자 미국을 등에 업고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대립하고 한반도에 관여하려는 자세를 견지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베 정권은 미국이 보기에 최고의 모범생이다.

염무웅 문학평론가
염무웅 문학평론가
7개국 정상회담이 세계적 의미를 가지는 데 있어 치명적 결락은 그 회담에서의 중국의 부재다. 중국의 숨은 야심이 무엇이었든, 아니 야심이 클수록 이 거대한 동력을 빼놓고 세계사의 내일을 논하는 것은 불완전하고 비현실적이다. 더욱이 우리에게는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중국이 불가근불가원이다. 물론 미국도 그렇다. 경륜도 책략도 없는 박근혜 정권으로서는 헤쳐 나가기 어려운 난제 앞에 서 있다는 것만 답답하게도 분명해 보인다.

염무웅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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