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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허방 리더십 / 김지석

등록 2015-06-15 18:50

짐(朕)은 과거 임금이 자신을 스스로 지칭하던 말이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처음으로 자신에게만 쓰도록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엄청난 용어인 듯하지만 내용은 그렇지가 않다. ‘조그맣게 갈라진 틈’ 또는 ‘그림자와 같은 사소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왕들도 짐이라고 해오다가, 중국 원나라의 입김이 강해진 고려 충렬왕 때부터 고(孤, 부모가 없는 사람)나 과인(寡人, 덕이 적은 사람)이라고 했다. 모두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통치를 잘하려면 지금의 고귀함이 낮은 것을 기초로 이뤄졌음을 끊임없이 자각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곧 ‘삼가는 리더십’ ‘소박하고 조화로운 리더십’에 대한 강조다.

다른 리더십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초 새해 인사회에서 입법·사법·행정 등 각 분야의 협조를 당부하면서 ‘기러기론’을 내놨다. 그는 “앞장서 날아가는 기러기들이 호흡을 맞춰 날갯짓을 하면 공기의 흐름이 상승기류로 바뀌어서 뒤따르는 기러기들의 비행능력을 70% 이상이나 높여준다”고 했다. 전형적인 ‘이끄는 리더십’ ‘권위적인 리더십’이다.

두 리더십 모두 타당한 면이 있다. 중요한 것은 때와 상황이다. 야당은 기러기론에 대해 ‘브이(V)자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고 나머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식’이라며 ‘불통과 일방 독주식 제왕적 리더십’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이후 국회 등 정치권과의 관계와 복지 문제 등에서 권위적인 모습을 보였다. 조화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에서 허방을 짚은 것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한달가량 이어지고 있다. 이제까지 정부가 가장 많이 비판받은 것은 두 가지다. 초기 방역의 실패와 혼란스럽고 역량이 떨어지는 컨트롤타워가 그것이다. 이끄는 리더십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제구실을 못한다는 얘기가 무성하다. 박 대통령은 삼가는 리더십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보이는 것은 또 다른 허방 리더십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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