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을 낮춰 부르는 속어로 ‘짱깨’란 말이 있다. 구한말 우리나라에 진출한 중국 식당 주인을 일컫던 ‘장구이’가 변형됐다는 해석이 있다. 원래 이 말은 전장(錢莊)의 우두머리를 나타내는 장궤(掌櫃)에서 유래했다. ‘돈이 머무는 곳’쯤으로 풀이될 만한 전장은 송나라 시절 양쯔강 남쪽 지방에서 처음 등장한 조직이다. 오늘날의 은행처럼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챙기거나 돈을 맡아 보관해주는 일을 했다. 전장의 우두머리 옆에는 항상 손금고가 놓여 있었다고 하는데, 그 손금고가 바로 장궤다. 전장의 우두머리가 쥐고 있던 손금고가 우두머리 자체를 부르는 말로 변했다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중국 식당 주인을 지칭하는 말에 이른 셈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은행의 기원을 17세기 초 영국 사회에서 찾는 편이다. 찰스 1세의 폭정에 시달리던 부유한 런던 상인들이 원래 런던탑에 보관하던 자신들의 금화를 금고를 갖춘 금세공업자(골드스미스)에게 옮긴 데서부터 은행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상인들은 상거래를 하며 무거운 금화를 직접 주고받는 대신 금세공업자를 찾아가 금화로 돌려받을 수 있는 인출증을 교환했고, 금세공업자들은 상인이 맡긴 예금을 토대로 대출 업무까지 선보였다. 하지만 이런 해석엔 경제학이란 학문이 태어난 고장인 영국 사회 중심적 사고가 깔려 있다. 당장 중국 송나라 시절의 전장만 봐도 오늘날 은행의 핵심 기능을 모두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디지털 혁명과 만난 은행의 모습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쉽게 가늠하기 힘들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8일 인터넷전문은행(인터넷은행)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아무리 겉모습이 변한다 해도 은행의 핵심 기능은 예금과 대출 업무다. 엄연히 남의 돈을 맡아 굴리는 일이다. 어쨌거나 인터넷은행 도입은 산업자본에 은행업 진출의 문호를 열어주는 것이다. 남의 돈을 제 금고 이용하듯 마음대로 끌어다 쓰고픈 ‘본능적 유혹’을 얼마나 철저하게 차단할 수 있는지가 열쇠다.
최우성 논설위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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