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을 출간했는데 보내주고 싶다며, 선배가 주소를 묻는 전화를 걸어왔다. “잘 지내시죠?” 인사부터 건넸다. 선배는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잘 지내긴, 꾸역꾸역 살지 뭐.” 내 안부를 묻는 선배에게 나도 마찬가지라 답했다. 전화를 끊고서 작은 다짐을 했다. 앞으로는 잘 지내느냐고 인사하지 않고 어떻게 지내느냐고 인사를 해야겠다고. 이제는 잘 지낸다는 것이 도저히 정상적인 삶이 아닌 것만 같은 나날이다. 잘 지낸다는 것에는 어딘지 모를 몰염치가 묻어나오는 것만 같은 나날이다. 점점 더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그래도 나는 참으로 잘 지낸다. 티브이 요리프로와 육아프로를 보면서 혼자 히죽대는가 하면,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 청소도 잘하고 해야 할 일을 하루하루 잘 처리하고 지낸다. 오늘 저녁은 예쁘게 떠 있는 초승달을 보려고 창문에 붙어 있었고, 목마른 식물에게 물도 주었다. 이만하면 잘 지내는 것이다. 그러나 고요하고 차분하게 잘 지내는 와중에도 몸 안에 갇힌 불만과 불안과 분노들은 가끔씩 비등점을 넘는다. 끓어넘치게 하지 않으려고 더 많이 청소하고 더 많이 잠을 잔다. 조금 전엔 후배와 문자를 주고받다가 칠월엔 맛난 것을 함께 먹자는 약속을 했다. 후배는 그때까지 잘 지내라고 내게 말했다. 이미 잘 지낼 리 만무하지만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후배는 그래도 잘 지내자고 거듭 말했다. 만나면 꼭 물어보고 귀 기울여 들을 것이다. 어떻게 지내는지를. 하루하루를. 소소한 것들을.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