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보수주의자들의 언어 프레임을 잘 분석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그는 부시 정부가 2003년 9·11 테러 뒤 ‘테러와의 전쟁’ 프레임을 설정하고 이라크 침공을 밀어붙인 사례를 제시했다.
테러 사건 직후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여 오사마 빈라덴과 알카에다 요원들을 찾아내 기소하고 필요하다면 미군을 (전쟁이 아니라) 치안활동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경찰의 문제’라는 프레임이었다. 부시 정부와 보수 선전기구들은 이를 무시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동했다. ‘전쟁’은 군대와 전투, 도덕적 십자군, 총사령관, 영토의 점령, 적의 항복, 부대를 지원하는 애국자 등의 언어로 쉽게 연결된다. 전쟁 중에 적은 쏘아 죽여야 할 죄인이다. 테러와의 전쟁 프레임은 총사령관으로서의 대통령한테 무제한으로 권한을 부여한다. 전쟁 프레임은 정당한 절차, 권력 사용의 합당한 이유 제시 필요성 등을 부정한다. 전쟁 중에 다른 모든 관심사는 이차적인 게 된다.
우리나라 메르스 사태에서도 보수언론들은 전쟁 프레임을 사용했다. “메르스 전사들 힘내세요. 격려 물결” “사투 중인 메르스 전사들을 힘차게 응원한다” “메르스와의 전쟁, 최고의 백신은 성숙한 시민정신” “황교안 총리, 첫 임무는 메르스 전쟁 야전사령관”…. 감염 위험과 살인적인 격무를 무릅쓰고 진료에 헌신한 공공병원 등의 의료진은 당연히 격려해야 한다. 하지만 전쟁 프레임을 사용하면, 정부의 늑장 대처와 구멍난 방역 때문에 일부 의료진이 모든 부담을 한꺼번에 짊어지게 된 정책 실패를 알게 모르게 숨기게 된다. 전쟁 때는 모든 게 부족하고 제대로 돌아가기 어려운 법이니까.
대안이 있다. 메르스 의료진을 ‘전사’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하여 책임을 다한 사람들이라고 격려하는 것이다. 언어를 바꿈으로써, 위기상황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기관의 존재를 함께 드러낼 수 있을 터이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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