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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4차 핵실험의 그림자

등록 2015-06-29 18:44수정 2015-06-29 18:44

남북 관계는 더 나빠지고 북한 핵 문제를 풀려는 동력은 갈수록 떨어진다. 짙어지는 것은 4차 핵실험의 그림자다.

지난 23~2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7차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북한 핵 문제는 중요 의제가 되지 못했다. 합의문에 ‘관련 당사국이 필요한 행동을 취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을 조성할 것을 호소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의지가 실려 있지 않다. 회담 재개 노력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는 미-중 관계의 성격 변화와 맥락을 같이한다. 시진핑 중국 주석 취임 직후인 2013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첫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핵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의제였다. 2시간 동안 진행된 만찬 대화에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 썼을 정도다.

미-중 관계는 경쟁과 협력의 요소를 함께 갖는다. ‘경쟁적 협력’ 또는 ‘협력적 경쟁’이란 표현이 모두 타당하지만, 갈등이 기본이고 그 위에서 선택적으로 협력을 추구하는 구도가 굳어지고 있다. 이번에도 가장 부각된 것은 남중국해 문제와 해킹 사건(사이버 안보) 등이었다.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는 미국에 맞먹는 강대국이 되려는 중국의 전략적 목표가 바뀌지 않는 한 갈등은 불가피하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출범에서 보듯이 중국은 역량과 의지를 갖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미-중 경쟁이라는 덫에 걸려 있다. 우선 일본 과거사 문제가 어정쩡하게 봉합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22일 한-일 수교 50돌 기념행사에 한·일 정상이 직접 나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패배다. 미국을 업고 호가호위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우리 정부의 ‘정상 교차참석’ 제의를 못 이긴 체 받아들이는 즐거움을 누렸다. 미국은 과거사 문제로 일본을 더 압박할 생각이 없다. ‘위안부 문제에 상당한 진전이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가상현실’일 뿐이다.

대중국 공동전선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요구도 거세진다.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한국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의 최근 발언은 한-미 동맹에 대한 미국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남중국해 문제의 기본은 영유권 분쟁이다. 미국이 전면에 나설 일이 아니다. 미국이 중국의 인공섬 건설 등을 ‘항행의 자유 제한’ 시도라고 공격하는 것은 해양패권 유지를 위해서다. 우리가 미국에 동조한다면 한-중 관계의 틀은 크게 달라지게 된다. 미국이 밀어붙이는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의 주된 대상도 중국이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미국과 일본의 대중국 전략에서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꽃놀이패와 같다. 핵 문제를 풀려고 하기보다 핵위협을 부각시켜 활용하려는 원심력이 갈수록 커진다. 최근 미국에서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에 이어 전술핵무기의 한국 배치론까지 나온다. 올 들어 북한 핵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미국 정부 안팎에서 잇따라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동아시아 지역은 이미 새 군수산업 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우리 국익에 맞지 않고 동아시아 전체의 안보 환경을 악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의 주체적인 판단과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흐름을 바로잡으려고 하기는커녕 그때그때, 그것도 한발씩 늦게 현상을 따라가기만 한다.

북한은 동아시아 대결구도의 빌미가 되는 상수이자 시한폭탄이다. 핵 문제는 방치할수록 악화하기 마련이다. 중국도 북한 문제에서 미국과 분란을 만들지 않으려고 ‘기약 없는 현상유지’ 쪽으로 기울면서 북한이 감수해야 할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진다. 북한 정권이 경제 활성화라는 탈출구조차 찾지 못한다면 선택 폭은 아주 좁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4차 핵실험은 이미 선택지에 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알면서도 방관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책임이다. 우리에게는 쓸 수 있는 다양한 자원이 있다. 무엇보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를 비롯해 동아시아 모든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견국가로서 위상과 역량이 있다. 당장 자신의 목소리를 갖고 움직여야 한다. 북한을 포함해 모든 한반도 관련국을 대상으로 한 ‘다차원적 고위급 특사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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