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광호가 굴뚝에 오른 지 403일째다. 오늘 우리 노동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온몸으로 보여주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묵시적으로 가리키고 있다. 이 땅의 정치와 사회는, 언론과 지식인은 차광호와 차광호들이 땅으로 내려오도록 작은 손짓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의 이름은 차광호. 경북 구미 스타케미칼 해고자 복직 투쟁위원회 대표인 그가 45미터 높이 굴뚝에 오른 지 오늘로 403일째다. 1년을 넘긴 그의 하늘살이 경험은 겨울의 매서운 추위보다 태풍이 더 두렵다고 말한다. 그 태풍의 계절이 다시 다가오지만,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하늘에 올랐는데 바뀐 것 없이 내려가면 땅조차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그의 말에 비추어 아직 땅에 내려올 때가 되지 못한 듯하다.
저 굴뚝 위에서 양팔을 활짝 펴 보이는 차광호의 상반신 모습은 21세기 초 한국 사회를 절개한다면 오롯이 드러나야 하는 단면의 하나다. ‘슬픈’ 단면이라고 말하려니 겸연쩍어지는데 그만큼 더 슬퍼지는 단면이다. 이 땅에서 고공농성은 1931년 지붕 위에 올라간 평양의 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이 처음 시작했다는데, 하늘이 노동자들의 삶터가 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경제위기의 칼날이 할퀴고 지나간 뒤 2000년대 들어서였다. 경제위기라고 했지만 타격, 조정된 곳은 경제계가 아니라 노동계였다. 땅에서 쫓겨나기 시작한 노동자들은 도심의 폐회로(CC) 카메라탑에, 한강다리 고공난간에, 타워크레인에, 건물 옥상 망루에, 교통 관제탑과 철탑에, 광고탑과 공장 굴뚝에 이르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올라 둥지를 틀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지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갈수록 고공 상황은 농성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가혹해졌다. 이미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으니 자본의 위력 앞에서 정치는 실종되었고 사회는 욕망의 포로가 되어 이웃에 대한 상상력을 잃어갔다. 우리는 익숙해지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나쁜 것에 익숙해지면 더 나쁜 것을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고공농성 기간이 김진숙의 309일 기록을 훌쩍 지나 400일을 넘기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조차 대부분은 데면데면하게 대한다. 하기야 세월호 사건에 피로를 말하는 자들이 적지 않은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싶긴 하다.
지난여름 동료들이 올려준 화분에 콩과 ‘그의 친구들’을 심어 키우는 차광호는 콩을 볼 때마다 동료들을 떠올린다면서 “살아 있는 생명을 내 손으로 가꿀 때 나도 삶의 의지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삶의 의지! 그에게 가까운 생명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곤 콩과 ‘그의 친구들’뿐이니 그가 ‘굴뚝 농부’가 된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동료를 떠올리면서 생명을 가꾸는 차광호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회를 향해 ‘생명에 대한 예의’로 응답하는 것이라고 동시대를 사는 한 사람으로서 말하는 것은 그가 기필코 살아서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차광호들도 살아서 싸우며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을 안간힘처럼 전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차광호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를 절개한 단면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는 메르스 사태와 관련하여 방역체계상의 잘못을 인정하며 국민에게 사과한 삼성 재벌의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이다. 다른 땅에서 오래 산 탓일까, 고개 숙인 이재용의 모습이 내 눈에는 희한하게 다가왔다. 국가적 재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국민 앞에서 재벌 부회장이 사과를 한다? 대통령이 아니고? 백혈병 등 희귀병으로 생명을 잃은 삼성전자 노동자들과 가족에게 사과하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그가 병원의 최고책임자라는 점도 희한한 일이었지만, 일개 병원에 지나지 않는 삼성병원이 국가적 병난에 책임진다는 것도 희한하긴 마찬가지였다. 미필적 고의에 속할 테지만, 그는 국민에게 사과하는 행동을 통하여 우리에게 국가의 부재를 선언하면서 자본독재의 시대라는 점을 재확인시키려는 게 아니었을까? 삼성병원이 웅변하듯 공공성을 찾기 어려운 국가이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차광호는 이재용과 함께 자본독재 시대의 양극단을 대변하고 있다. 이렇게 반생명의 자본독재 체제가 강화된 것은 대통령 후보 시절에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약속했다가 당선된 뒤에는 암 덩어리인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일념밖에 남아 있지 않은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가 보여주듯 국가는 공공성을 보장, 강화하는 대신 자본에 종속되어갔고 언론과 지식인들도 자본이 던져주는 떡고물에 포섭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독재 체제의 강화를 오로지 국가의 책임 방기나 배신의 정치 탓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노동이 분화되면서 자본에 포섭당한 노동을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 복수노조가 허용되지 않았을 때엔 어용노조 때문에 민주노조를 건설하기 어려웠다면 복수노조가 허용된 뒤엔 거꾸로 민주노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복수노조 제도가 악용되고 있다. 기본 고정급은 낮고 잔업을 해야 생활급을 보장받는 노동자의 현실을 헤집은 자본의 회유 공작에 유성기업 등 민주노조가 어렵게 마주쳐야 했고 지금도 마주치고 있다면, 경찰과 특전사 출신을 무더기로 고용한 갑을오토텍은 노골적인 경우에 속한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민주적인 노조였던 사업장이 점차 욕망의 포로로 변질되어 갔다는 점이다. 사내 하청이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음에도 노동조합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힘쓰는 대신 일부 노동자만을, 그것도 단계적으로 고용하겠다는 사측의 편법에 부응한 현대와 기아자동차 노조의 경우는 조합원들의 소비와 소유 욕망에 밀려 연대 정신을 팔아버린 결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법이란 “강자의 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는데, 하청 노동자들을 위한 법의 판결도 외면하는 노동조합이라니! 노동이 노동을 무시하면서 자본의 횡포에 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에겐 내 부모처럼 나도 노동자이고 따라서 내 자식도 노동자가 되리라는 계급의식을 가진 노동자 주력부대가 정치적으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 이 점은 1848년 2월 혁명으로 앙시앵레짐이 그 체제의 특권계급이었던 귀족들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유산자계급과 무산자계급이 확연히 분리되고 그 뒤로도 계속 이어진 역사과정을 밟은 유럽과 다른 점이다. 노동자들은 많으나 노동자의식이 드문 곳에서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겪고 그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노동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기 어렵고 연대의식의 토대 또한 탄탄하기 어려운 배경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차광호와 차광호들은 오늘 우리 노동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온몸으로 보여주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묵시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에 사람 사는 세상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 땅의 정치와 사회는, 언론과 지식인은 차광호와 차광호들이 땅으로 내려오도록 작은 손짓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2007년에 파산한 한국합섬을 인수한 스타케미칼 자본은 2011년에 공장을 재가동한 지 1년8개월 만인 2013년 적자와 경기침체를 이유로 철수하면서 당시 권고사직을 거부한 29명을 해고했다. 지금 11명이 남아 한국합섬 때부터 ‘청춘을 바친 공장’의 재가동과 함께 고용승계, 노조 인정을 요구하는 해고자들에게 사측은 ‘제3의 법인 설립을 통한 고용’ 안을 내놓았지만 자본의 ‘먹튀’ 의혹을 떨치지 못한 해고자들의 ‘새 법인 해산 때 고용보장’ 요구를 거부한 상태에 있다. 내가 잘못 판단하는 것일까,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다. 우리가 관심과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면, ‘굴뚝 농부’가 다시 노동자로 이 땅을 밟는 일이.
홍세화 장발장은행 대표·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홍세화 장발장은행 대표·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