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7월.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골목의 구멍가게 주인부터 대기업 사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용주들에게 ‘대통령의 재고용협약’이란 제목의 문서를 보냈다. 주당 12~15달러의 최저임금을 준수해야 한다는 등의 지침이 담겼다. 대통령 취임 뒤 100일 남짓 지났을 무렵이다. 때맞춰 국가부흥국(NRA)은 대대적인 경제 살리기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그 방식이란 게 우습기 짝이 없었다. 흰 바탕에 푸른 독수리 한 마리가 그려져 있고 그 밑엔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한다’(We Do Our Part)는 글귀가 쓰인 배지와 포스터를 전국 방방곡곡에 뿌린 것이다. 푸른 창공을 향해 솟아오르는 푸른 독수리처럼, 곤두박질치던 경제가 힘차게 재도약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을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 자신도 “실업에 대항하는 여름 대공세”라며 이 캠페인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블루 이글 캠페인의 실상은 낯익은 방식의 상징조작에 가까웠다. 블루 이글 포스터를 내걸지 않은 가게 또는 공장이나, 포스터를 내걸지 않은 가게 또는 공장의 물건을 구입하는 소비자는 모두 ‘우리 편’이 아닌 ‘적’으로 간주했다. 가슴에 배지를 달고 다니지 않는 개인들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손가락질당했다. 취임 뒤 100여일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경제 살리기 실적을 내지 못하던 루스벨트 대통령이 밀어붙인 관제 애국 마케팅이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정부가 태극기 배지 달기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로 했단다. 장차관,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장부터 솔선수범할 모양이다. 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은 정식으로 배지 착용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태극기 왼쪽엔 ‘나라’, 오른쪽엔 ‘사랑’이라는 세로 글귀가 쓰여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배지나 포스터 그 자체는 하나의 상징물에 불과할 터이나, 어리석게도 이분법 구도에 흠뻑 취해 상징조작에 나선 사례는 널려 있다.
최우성 논설위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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