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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원숭이한테 물린 알렉산드로스 / 황상철

등록 2015-07-15 18:32

1920년 10월2일, 정원을 산책하던 그리스 알렉산드로스 국왕이 독일산 셰퍼드 ‘프리츠’와 궁정 포도밭 관리인의 애완 원숭이가 으르렁대며 싸우는 것을 목격했다. 견원지간이었다. 왕이 두 동물을 뜯어말리는데 다른 원숭이가 달려들어 왕의 다리와 몸통을 물었다. 국왕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날 밤부터 국왕은 고열에 시달렸고, 결국 패혈증으로 10월25일 숨졌다. 그때 나이 27살이었다. 이른바 ‘역사를 바꾼 원숭이 이빨’ 사건이다.

젊은 국왕의 죽음은 그리스 역사를 뒤틀기 시작했다. 1919년 5월 현재의 터키 땅인 소아시아를 침공해 스미르나(이즈미르)를 점령한 그리스군은 당시 내륙 깊숙이 들어가 전쟁 중이었다. 그리스는 가난했다. 영국과 프랑스 등으로부터 금융 지원을 받았다. 국왕이 죽은 뒤 11월22일 국민투표가 예정됐다.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콘스탄티노스의 복위를 놓고 찬반을 묻기로 했다. 콘스탄티노스는 친독일 성향이었고, 1차 대전 참전 여부를 두고 내각과 갈등하다가 1917년 폐위돼 스위스로 망명했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콘스탄티노스가 복위하면 금융 지원은 없다고 그리스를 위협했다. 그리스 국민들은 코웃음을 쳤다. 99%가 복위에 찬성했다. 화가 난 영국과 프랑스는 금융을 차단했고, 이전에 약속했던 대출도 보류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군은 국왕 충성파인 무능한 군인들이 장악했다. 1922년 그리스군은 패배했고, 100만여명의 그리스인들은 3000년간 발 딛고 있던 소아시아에서 쫓겨났다. 400만명이던 그리스 인구가 500만명으로 급증했다. 굶어 죽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국민투표가 가져온 비참한 결과였다.

95년이 흐른 7월5일 그리스는 국민투표에서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 협상안을 일축했다. 하지만 쓰라린 과거 역사에서 배웠는지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13일 더 나쁜 협상안을 받아들였다. 이번엔 그리스가 과거와는 다른 길을 갈 수 있을까.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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