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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상관 쓰여요”

등록 2015-07-22 18:38

동생의 개인전이 시작된 날, 꽃다발을 두 손 모아 들고 찾아온 최연소 손님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미술을 가르칠 때 만났던 다섯 살 아이라 했다. 아이의 엄마는 낯을 가려 엄마 뒤에 숨는 아이를 쓰다듬으며, 이 아이가 태어나 처음 갤러리 나들이를 하는 거라 했다. 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갈 때, 거기까지 와준 그 아이와 그 엄마에게도 동석을 권했다. 아이는 식당 한편에 앉아 숟가락을 손에 꼭 쥔 채로, 입을 반쯤 벌리고 골똘하게 사람들을 구경했다. 귓바퀴를 따라 혹은 콧방울이나 입술에 피어싱을 박아넣은 사람, 초록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닭 볏처럼 세운 사람, 욕설을 섞으며 대화를 나누다 깔깔 웃는 사람. 아이는 미간을 찡그리며 만화 속 악당을 바라보듯 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쓰여 아이 앞에 반찬을 내밀어주었다. “좀 이상해 보여?” 하고 말을 걸어보았다. 아이는 눈을 깜박이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어 보였다. 그러곤 대답을 했다. “상관 쓰여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의 말을 곱씹었다. 상관없다고 말해주고 싶은 의젓함과 실은 신경 쓰인다고 고백하고 싶은 속내가 동시에 표출된 표현이었다. 나는 삐져나오는 웃음을 어쩌지 못한 채로, 그 아이가 무사히 밥을 다 먹을 수 있게 반찬을 챙겨주었다. 갓 자유자재로 말을 구사하기 시작했지만 언어적 관습에는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이 다섯 살은, 자신의 야릇한 심정을 대변해줄 표현을 이렇게나 순식간에 발명할 수 있구나 싶어 존경스러웠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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