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톨게이트를 진입하여 낯익은 길에 접어들어 시가지를 한 바퀴 돌면서 생각했다. 이곳에 와서 살아볼까. 아직도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어온 시장과 목욕탕과 빵집. 다니던 학교와 학교 앞 문방구와 옛집. 여기에 다시 돌아와 산다면, 유년의 시간 위에서 현재의 시간을 살 테니, 언제고 두 겹의 길을 걷는 현기증이 생길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행복했던 과거를 끊임없이 소환해낼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것이고, 행복하지 않았던 과거들을 끊임없이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열어둔 여행가방을 다시 여미어 차에 싣고서 고향의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형산강을 뒤로했을 때에 다시 생각했다. 그리움을 달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렇게 찾아와 직접 만나는 일이며, 그리움이 달래졌다면 그것으로 다 되었다는 걸 알았다. 행복한 기억을 소환하여, ‘행복한’이라는 수식어를 제거하여 ‘기억’이라는 명사만을 남겼으니 충분했다. 사람을 만나러 갈 때에도 나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 사람을 만난다는 것과는 무관한 일인 것만 같았다. 설렘은 기대감이라기보다는 가장 적극적으로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는 안도감에 가까웠다. 그리운 사람과 헤어져 돌아섰을 때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운’이라는 수식어를 제거하여 ‘사람’만을 남겨둔 채로 그 사람을 대하는 일. 그때부터 사람이 사람으로 보였다. 내가 생각해온 그 사람이 아니라 그를 살아온 그 사람을 비로소 마주하게 되었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