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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탈식민을 위하여!

등록 2015-08-04 18:33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30년 전 고려대나 연세대 학생 사이에서 가장 유행했던 단어는, ‘신식민지’와 ‘종속이론’이었을 것이다. 지금 그 대학 학생들 중에서 이 단어의 뜻을 제대로 아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격세지감이란 말밖에 다른 표현은 떠오르지 않는다.

중국을 겨냥한 미·일의 공격적 패권 전략에 말려 한반도의 전장화 위험까지 감수하는 게 평화와 통일로 향하는 길일까? 자국민의 생명을 장기적으로 위협할 패권 국가의 지역 전략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을 두고 신식민지적 상황이라고 이야기하면 크게 틀린 말인가?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얼핏 생각하면 30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다. 요즘같이 평균 기대수명이 80살 안팎이 된 시대에는, 한 개인이 사회화되고 나서도 그 기간의 2배 이상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근현대가 압축된 방식으로 실현되고, 진보도 퇴보도 초고속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30년은 상전벽해가 가능한 시간이다. 30년 전의 고려대나 연세대 학생 사이에서 가장 유행했던 두 단어는, 아마도 ‘신식민지’와 ‘종속이론’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미국으로부터의 돈 흐름에 의존하는 한국 기업과 미국 관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웃고 우는 한국 정계, 그리고 한국 땅에 핵무기까지 비치한 미군의 존재가 확연히 ‘근본적 문제’로 보였다. 그들은 과거의 독립투사들처럼 이런 상황들을 투쟁으로 풀어 자주의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30년 뒤인 지금 그 대학의 학생들 중에서 ‘신식민지’나 ‘종속이론’의 뜻을 제대로 아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오늘날 거의 누구나 당연시하는 그 두 대학의 ‘백화점화’된 캠퍼스의 모습이나 영어강의 광풍을, 과연 30년 전의 학생들이 어떻게 봤을까? 격세지감이란 말밖에 다른 표현은 떠오르지 않는다.

한-미 관계가 동등해진 것도 아닌데, 이 비대칭적 관계에 대한 급진적 불만은 왜 이렇게도 빨리 증발됐을까? 이유들은 물론 여러 가지다. 동구권의 몰락과 북한의 빈국화도 한몫을 했으며, 또 통합진보당의 강제 해산을 그 결정판으로 한 역대 정권의 좌파민족주의에 대한 탄압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동시에 1980년대 말부터 한국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름의 내부 식민지가 생기고, 한국 자본이 국외 저임금 지대로 그 경제 영토를 넓히는 등 국제적 먹이사슬에서 한국의 상대적 위치가 격상한 것도 한국인의 대외관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미국에 종속돼 있지만 이제 우리에게 적어도 경제적으로 종속돼 있는 타자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식민지에 대한 비판을 잠재운 요인은, 아마도 지난 30여 년 동안 대미 종속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경제 모델이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다수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신식민지라 해도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고 계속 경제가 성장해왔으며, 대미 종속해왔다 해도 경제적으로 중요한 대중(對中) 관계를 잘 풀어갈 수 있으면 되지 않는가, 현실적으로 지난한 종속성의 청산은 과연 급한가 하는 판단은 보수화돼가는 다수의 ‘상식’이 된 셈이다.

종속은 어느 시점에서 피상적으로 보면 장점으로 보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환상이 오래가느냐다. 예를 들어 지금 최악의 경제적 재앙을 겪고 있는 그리스를 보자. 재앙의 씨앗은 2000년의 유로존 가입과 통화로서의 유로 채택이었다. 사실상 독일 자본의 경제식민지로서 유로존에 가입한 것이다. 처음엔 경제적인 호황을 누렸다. 1980~90년대 계속 고전해온 그리스의 경제는 2000~2007년 연간 평균 4%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일시적인 호황을 보였다. 독일 등 유럽 핵심부 국가들에 경제적으로 종속된 만큼 차관 등의 형태로 집중 투자를 받을 수 있어서, 처음에는 유로존이라는 이름의 경제 종속이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만도 했다. 그러나 늘어나는 빚이야말로 최악의 함정이란 사실이 다 밝혀진 지금에 와서, 2007년 이전 유로존에 대한 환상들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그리스에서는 유럽 핵심부에 대한 경제적 종속이 재앙을 낳았지만, 한국의 대미 종속은 훨씬 더 다변화돼 있어 어떤 의미에서는 ‘신식민지’의 정의에 부합한다고 봐야 한다. 일차적으로 한-미 군사 동맹이 남한 영토에 대한 미군의 일종의 군사보호령화를 가능하게 한다. 미국이 지역적 안정을 도모했다면 군사보호령화의 의미는 또 달랐겠지만, 현재로서 미국이 지향하는 것은 지역적 안정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지역적 리더로 부상하려는 중국에 대한 강경 견제·포위책, 즉 지역적 안정의 파괴 행위다. 최근 동아시아 전체에 커다란 우려와 반발을 불러일으킨 일본의 헌법9조 무력화, 즉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탈바꿈하는 재무장의 시도를, 중국 견제 차원에서 주도·지원해온 세력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중국을 잠재적 주적으로 삼는 미-일-한 삼각 군사 동맹의 공고화다. 박근혜 정권이 이런 미국의 전략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사실을, 작년 7월에 체결된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한-미-일 3자) 정보 공유 약정”이 잘 보여준다. 지금이야 명목상 북한을 대상으로 하지만, 본격적 한-일 군사 ‘교류’가 가동되면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에 대한 정보 교환을 과연 막을 수 있겠는가? 정부는 한-일 상호 군수 지원 협정 등 한층 더 높은 수준의 한-일 군사 블록화 계획은 없다고 애써 부인하지만, 이미 실무선에서 그런 교류 추진을 위한 접촉들이 진행 중이라는 보도들은 계속 나온다. 중국을 겨냥하는 미·일의 공격적인 패권 전략에 말려들어 한반도의 전장화 위험까지 감수하는 것이 평화와 통일로 향하는 길일까? 한국 정부가 한국민의 생명을 장기적으로 위협할 패권 국가의 지역 전략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은 신식민지적 상황이라고 이야기하면 과연 크게 틀린 말인가?

가장 무서운 것은, 신식민지적 상황이 미군의 총검이라기보다는 한국의 친미 지배엘리트와 미국 사이의 이해관계의 일치와 밀접한 유착으로 유지·심화된다는 점이다. 대중국 갈등의 씨앗을 내포한다 해도, 오랫동안 미군에 의존해온 한국 군부로서는 미군의 새 지역전략을 무조건 따르는 게 자연스러울 뿐이다. 또한 예컨대 병원의 영리자회사 설립 허가 등을 통해서 사실상의 의료민영화 쪽으로 점차 정책 방향을 잡고 있는 박근혜 정권의 경제정책도, 의료부문 진출로 제조업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려 하는 국내 대기업의 이해를 대변해주는 동시에 미국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뿐이다.

돌이켜보면 미국을 비롯한 핵심부 국가들에 대한 종속성이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 선언(1995년) 이후 지난 20년 동안 엄청나게 심화되면서 국내외 자본에 두루 이익을 가져왔다. 단적인 예로 외국계 은행들의 한국 시장 점유율은 1997년만 해도 약 4%에 불과했다. 현재 외국계 은행 및 해외은행 국내 지점들의 시장점유율은 무려 20%에 이른다. 한국의 국내 은행이라 해도 대부분의 경우 외국(주로 미국과 유럽) 자본은 50% 안팎의 주식을 보유한다. 단기 수익·배당금의 최대화를 노리는 외국 자본이 한국의 금융시장에서 선호하는 것은 수익성이 좋은 소비자 대출이고, 사회적 의미가 커도 단기적으로 수익성이 좋지 않을 수도 있는 영세상인 지원 등을 힘써 꺼리기에 서민들 처지에서 외국 자본의 금융시장 장악은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 한데 국내 자본의 처지에서는 금융부문의 수익성 증가가 본인들의 이윤 추구에도 보탬이 되기에 ‘금융 식민화’에 대해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다.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보유 주식의 비중이 2014년 35% 가까이 됐다. 이는 일본(30%)보다 높은 숫자다. 한국 주식의 외국인 보유액은 1998년에 비해 무려 8배나 늘어 2014년 160조원에 달했다. 이는 인도나 인도네시아와 같은 나라들 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액보다 더 높은 금액이다. 단기수익을 노리는 핵심부 자본들의 국내 진출이 궁극적으로 국내 노동에 대한 착취 강도의 제고를 가져오는 등 민중의 입장에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만, 주식값이 오르기를 바라는 국내 투자자들의 입장은 정반대일 수밖에 없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신식민지란 국내 지배자와 국외 지배자들의 일종의 이해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다. 결국 신식민지 상황으로 피해를 보는 쪽은 평시에 각종 민영화, 시장화, 외국자본 침윤 속에서 착취당하고, 동북아 국제 상황이 심각해지면 총알받이로 징집당해야 할 한국 민중뿐일 것이다. 피해자인 민중이야말로 탈식민화를 위한 투쟁에 앞장서야 하지 않겠는가? 군사·정치·경제적 종속이 심화돼가는 상황에서는 민중을 위한 좀더 나은 세상이 오지 않을 것만은 확실하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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