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김지영씨가 2011년에 <피동형 기자들>이란 책을 냈다. 신문과 방송의 기사 문장에 퍼진 피동형과 익명 표현의 실태와 문제점을 잘 짚은 책이다. 피동형 표현은 ‘~풀이된다’ ‘~것으로 관측된다’ ‘~인 것으로 지적된다’ ‘~알려졌다’ ‘~주목된다’ 따위를 말한다. ‘풀이되어진다’ ‘판단되어진다’ ‘생각되어진다’라고 이중피동을 쓰기도 한다.
피동형 문장에는 주어가 생략된다. 풀이된다고 하면 누가 풀이하는 건지, 지적된다고 하면 누가 지적하는 건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 주체를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숨기는 문장 구조다. 영문법에서도 수동태는 행위의 주체를 밝히고 싶지 않거나 불분명할 때, 또는 행위의 책임을 언급하고 싶지 않을 때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익명 표현은 ‘정부 관계자’ ‘한 여당 의원’ ‘한 전문가’ ‘소식통’ ‘측근’ 따위를 말한다. 주어는 표시하되 실체를 애매모호하게 흐리는 것이다.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서처럼 익명 처리가 필요할 경우는 있다. 하지만 언론이 책임감 있게 정보를 전달하려면 익명 표현을 피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김씨는 전두환 신군부가 언론을 탄압하던 시절에 의견과 판단의 주체를 숨기고 싶은 기자들의 심리가 무주체 피동형 표현과 익명 표현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언론인이 권위주의 체제를 찬양하기 싫고 비판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검열을 한 결과라는 것이다. 문제는 민주화가 된 뒤에도 피동형과 익명 표현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김씨는 한국 언론계에 ‘5공의 유령’이 남았다고 지적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 패전 70년을 맞아 발표한 ‘아베 담화’에서 식민지배와 침략을 사죄하는 시늉만 했다. 이를 위해 주체를 명시하지 않는 언어 전략을 택했다. 행위의 주체와 행위의 책임을 밝히고 싶지 않을 때 피동형과 익명 표현을 많이 쓴다는 원리를 생각해보면 아베의 속마음을 더욱 쉽게 알 수 있을 듯하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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