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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후변화, 절체절명의 인권문제’

등록 2015-08-18 18:40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나는 기후변화가 21세기 인권침해의 주범 중 주범이라고 확신한다. 기후변화가 인류의 인권을 파괴할 규모와, 우리가 흔히 인권 운운하는 문제들의 규모를 비교해 보라.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 상차림을 걱정하는 격이다.

화석연료에 근거한 경제성장 패러다임에 찬성하는 사람을 좌우파를 막론하고 채굴론자라고 부른다. ‘채굴 대 반채굴’ 논쟁은 21세기 경제·정치·사회의 최대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인권운동은 어느 편에 서야 할까.

정확히 100일 뒤인 11월 말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에서 북동쪽으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교외의 르부르제에 전세계의 이목이 쏠릴 것이다.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의 정부 수반과 대표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한자리에 모여 인류의 미래에 관해 엄숙한 논의를 벌일 예정이다. 파리총회는 사상 최초로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보편적 기후변화 조처에 합의하려 한다. 인류의 미래를 지킬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이 팽배하다. 산업화 이전 수준에 비해 지구 온도 상승을 섭씨 2도 이내로 제한하려는 목표가 이미 비관적으로 되었고, 섭씨 4도 상승을 기정사실로 간주하면서 ‘적응’을 논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미친 시대가 아닌가.

나는 환경 전문가가 아니지만 기후변화가 21세기 인권침해의 주범 중 주범이라고 확신한다. 기후변화의 결과도 결과이지만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사람들의 태도는 그것 자체가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기후변화가 인류의 인권을 파괴할 규모와, 우리가 흔히 인권 운운하는 눈앞의 문제들의 규모를 비교해 보라.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 테이블 상차림을 걱정하는 격이다. 인간의 지각능력은 문제의 규모를 비례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진화하지 못했다. 문제의 크기만이 아니다. 시간의 축이 조금만 길어져도 그 시급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기후가 정상 범위 내의 변화치를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가는 현상을 기후이탈이라 한다. 현재 비율대로 탄소 배출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이른 예측치에 따르면 2033년부터 기후이탈이 시작된다. 올해 대학교에 입학한 새내기들이 마흔살이 되기 전이다. ‘문명사회의 특징과 부합되지 않는 세상’이 올 거라는 말도 나온다. 묵시록이 따로 없다.

환태평양의 섬나라들은 이미 이주를 시작했고, 개도국과 연안지역 주민들의 생계는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인구 2만1천명의 팔라우는 해수면 상승으로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놓였다. 이들은 국제사법재판소에 국제법상 유권해석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내놓은 상태이다. 산업화된 선진국가들이 초래한 기후변화가 개도국 주민들의 인권을 유린했으므로 이는 일종의 내정간섭이며, 주권국가 원칙을 규정한 베스트팔렌 체제를 위반한 것이라는 논리이다. 어쩌면 기후변화협약에 의무조항이 신설되기 전에 기존의 국제법으로 선진국들이 제소당하는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기후변화의 효과가 한국에서 더욱 심각할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국립환경과학원과 기상청이 발표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14’를 보면 한반도 주변 해양의 온도 및 해수면 상승은 전지구적 평균에 비교해 약 2~3배 더 높을 것이라 한다. 폭염에 의한 서울 지역의 사망자를 예측하면 현재 수준은 인구 10만명당 0.7명 수준인데, 20년 뒤부터는 1.5명 사망 수준으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 한다. 부산지역의 경우 해수면이 1미터 상승할 경우 연간 약 4천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같은 해운대가 어떻게 변할지 한번 상상해 보라.

기후변화가 인권을 침해하는 범주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인간의 생명권을 침해한다. 생명권은 인권을 거론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차원의 권리가 아니던가. 둘째, 건강권을 침해한다. 기후변화는 각종 전염병과 풍토병의 유형을 바꾸고 악화시킨다. 이상고온, 물 부족, 사막화, 산성화는 인간 심신의 평형을 교란한다. 셋째, 생계권을 침해한다. 식량안보가 위협받고, 농지가 유실되며, 흉작과 기근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자기결정권 침해, 생활수준 저하, 주거환경 악화, 문화의 질 하락, 재산권 침해, 교육환경 황폐화 등의 부정적인 영향도 확인된다. 기온이 상승하면 폭력과 갈등이 증가한다는 연구도 있다. 살인, 강간, 가정폭력과 같은 개인적 폭력, 그리고 집단간 폭력 및 정치적 불안정, 더 나아가, 사회제도 붕괴와 같은 재앙적인 결과가 발생한다. 우리가 무심코 에어컨과 자동차를 사용할 때 세계 어딘가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 인권운동은 최근 들어서야 기후변화를 가장 심각한 구조적 폭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07년 11월 몰디브제도의 수도 말레에서 인권운동가들이 발표한 ‘말레선언’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말레선언은 환경이 인류 문명의 인프라이고, 기후변화는 인류 공동체와 환경에 대한 즉각적·근본적·광범위한 위협이며, 모든 사람은 인간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기본권이 있고, 기후변화는 인권의 온전한 향유에 대해 명백하고 즉각적인 함의를 지니며, 유엔의 인권 기구들이 기후변화가 인권에 주는 함의를 한시바삐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기후변화의 구조적 폭력과 인권침해 사이에 이토록 명백한 연결고리가 있음에도 왜 지금까지 이것을 인권문제로 다루는 시각이 적었는가. 복잡한 이유가 있다. 우선, 기후변화가 주로 과학계에서 논의가 시작되어 그것의 생태적·환경적·경제적인 측면만 강조되는 경로의존성의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기후변화 협상이 주로 합의에 근거한 복지적 해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인권은 정의의 관점에서 해법을 추구하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인권운동은 이미 발생한 구체적인 사실이 아닌, 가상의 시나리오로 프레임이 된 쟁점을 다루기 어렵다. 설령 기후변화의 인권침해를 다룬다 해도 그것을 주로 경제적·사회적인 권리로만 파악했으므로 전통 인권담론에서 그것을 제대로 이행할 방법을 찾기 힘들었다.

지구적으로 야기된 나라 바깥의 문제에 대해 법적 소재를 따지기 어려운 점도 한몫을 했으며, 피해에 대해 자국 내에서 법적·정치적 책임 소재를 묻기도 어렵다. 게다가 개도국의 경우,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인권법과 인권규범보다 인도적 구호와 지원을 시급한 조치로 인식하곤 한다. 법논리에 경도되어 있는 인권이 형식적·법적 정의에 주로 관심이 있다면, 인도적 행동주의에서는 실질적·정책적 정의를 추구하는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인권담론은 인권침해를 야기하는 뚜렷한 행위주체와 뚜렷한 피해주체가 설정되는 관계만을 인권문제로 파악했으므로, 모든 사람이 개입되는 시스템적인 인권문제, 구조화된 인권문제를 인권의제로 여기지 않았다.

정직하게 문제의 핵심을 따져 보자. 기후변화의 근본원인이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라는 상식을 인정한다면, 화석연료 사용 자체를 정식 인권의제로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전세계 석유 및 가스 회사들과 자원 보유국들이 이미 확보하여 채굴 계획을 완료해 놓은 화석연료의 탄소 총량이 2795기가톤이다. 외부의 개입이나 저지가 없는 한 이들 전체량이 확실히 개발되어 대기에 뿜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세계 환경운동과 사회운동에서는 화석연료의 채굴을 저지하려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화석연료에 근거한 경제성장 패러다임에 찬성하는 사람을 좌우파를 막론하고 채굴론자라고 부른다. ‘채굴 대 반채굴’ 논쟁은 21세기 경제·정치·사회의 최대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고, 인류의 생존과 멸망을 가르는 새로운 진보-보수의 전선이 될 것이다. 이 싸움에서 인권운동이 어느 편에 서야 할까.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스티븐 험프리스는 인권운동이 다음과 같은 활동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땅속에 매장되어 있는 원유 중 적어도 80퍼센트 이상을 채굴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구체적이고 과단성 있는 조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원유채굴의 금지, 단계적 폐지, 원유시추 일시 중지, 과잉생산에 대한 벌금, 그리고 불법화를 단행해야 한다… 세상에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에 있는가. 기후변화와 같이 특별하고 실존적인 위협, 전지구적 차원의 위협이 인권의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데도 인권법, 인권 변호사, 전체 인권운동은 묵묵부답에 가깝고,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으니 말이다. 내 생각이 틀렸기를 바란다.” 이런 현실이 인권에 주는 끔찍한 함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불면의 밤을 뒤척여야 정상이 아닐까 한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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