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다락방에 올라가는 걸 좋아했다. 계단의 작은 폭과 다락방의 낮은 층고가 딱 좋았다. 엄마는 종종 다락방에서 어떤 물건을 찾아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다른 심부름은 마지못해 했지만, 그 심부름은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곳엔 엄마가 아빠와 연애하던 시절에 받았던 편지들과 아버지가 어린 시절부터 읽어온 책들이 수북했다. 유행 지난 안 입는 옷가지도 수북했다. 하나하나 꺼내어 펼쳐보다 깜박 잠이 들었다. 손댄 적 없는 것처럼 물건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다락에서 내려오면 다른 세상에 다녀온 듯했다. 배를 깔고 누워 비밀 일기를 적어 아무도 모르는 구석에 감쪽같이 - 정말 감쪽같았을지는 자신이 없지만 - 숨겨두었다. 내 책상에 앉아서는 검사를 받아야 할 공개 일기를 거짓으로 썼다. 대학 시절에도 비밀 기지가 있긴 했다. 나만 아는 단골 찻집, 인적 드문 공원에 찜해둔 내 나무 아래 그 의자. 동네 서점의 귀퉁이. 그러나 언젠가부터 비밀 기지를 가지지 않게 됐다. 따로 비밀한 시간을 보낼 이유와 여유가 없기 때문일까. 온갖 헤아림을 곱씹으며, 맨얼굴로 오도카니 숨어 있는 장소는 아이에게만 필요했던 걸까. 아이는 자신에게 비밀 기지가 필요하다는 걸 어떻게 인지할 수 있는 걸까. 어른들은 어쩌다 그런 감각을 상실하게 된 걸까. 필요한 것들을 하나둘 소유하게 된 이 어른의 시간. 진심을 드러내어 비밀 일기를 쓰는 시간과 비밀한 장소는 어쩌다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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