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만화를 보면 흥분되는 감정이 있습니다.” 이현세 작가의 만화 <천국의 신화>가 음란물 시비에 휘말렸을 때 김을동 의원이 했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의 성적 취향은 다르기 때문에 신화를 보고 흥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외설적 이미지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수치심을 해하면 불법 음란물”이라는 법적 기준이 허황될 때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엔 한 잡지 사진이 흥분 어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맥심> 한국판 9월호에 뒤표지로 실린 ‘나쁜 남자’ 화보다. 이 잡지는 배우 김병옥이 청테이프로 묶인 여자 다리가 늘어져 있는 차 트렁크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진과 함께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고? 진짜 나쁜 남자는 바로 이런 거다. 좋아 죽겠지?”라는 문구를 넣었다. 여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항의가 잇따르자 5일 이 잡지는 사과와 함께 전량 회수·폐기 조처를 택했다. 그러나 논란은 여전히 남는다. 배우 김병옥이 주로 출연했던 영화 이미지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화보를 문제 삼는다면 영화는 왜 문제가 되지 않는가. 폭력을 묘사한다고 해서 폭력을 미화한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음란물에 전혀 흥분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차 트렁크에 여자가 묶여 있는 사진도 그다지 별 느낌이 없었다는 사람도 많다. 일부의 ‘불편한 감정’을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억제하는 것이 성인물 탄압에 목청을 높이는 일부 보수주의자와 무엇이 다른가?
문제는 이 사진이 상당수 여자들에게 불러일으킨 감정은 불쾌가 아니라 공포였다는 것이다.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 범죄에서 여성 피해자의 비율이 85.6%(<2014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인 사회에서 아주 실제적인 공포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다. 1995년엔 29.9%였던 여성 피해자들이 가파르게 늘어날 동안 여성들이 맞고, 살해당하는 문화콘텐츠도 빠르게 늘었다. 현실을 반영한 것이지만 가끔 여자들을 겁주고 무력하게 할 뿐인 콘텐츠도 있다. 얼마 전 부부 스와핑을 소재로 한 스릴러 영화가 개봉했다. 남편이 쾌락에 젖을 동안 부인도 사이코패스 같은 남자에게 강간당한다. 그런데 여자는 조금의 저항도 하지 않는다. 어떤 성인 만화에서는 언니와 동생이 사는 집에 침입한 범죄자가 잔혹한 방법으로 두 여자를 고문하는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맥심 사진과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가해자의 폭력성을 더 돋보이게 할 목적으로 여자들이 당하는 이미지가 배치된다는 것이다.
같은 사진이라도 피해자인 여성의 고통이 주체가 되는 이미지라면 반대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가격하는 남자가 주체가 되는 콘텐츠는 막연히 밤길을 무서워하는 여자나 구체적인 폭력 경험이 있었던 여자들 모두를 두렵게 한다. 맞아도 싸다는 주장만 폭력을 미화하는 게 아니다. 폭력의 의미와 맥락이 배제되어 있으며, 폭력적인 상황에 대한 질문보다는 폭력의 쾌락에 집중되어 있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너무나 무시당하는 주제이기 때문에 내가 공포나 수치심을 느끼더라도 그 작품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말을 아끼려 했다. 자유에 한도와 기준을 정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표현의 자유는 시민적 관용을 통해서만 자란다. 그러나 이 문제에 성적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가 얽혀 있을 땐 창작자는 스스로 엄격해져야 하며 책임을 감내해야 한다. 그 책임은 작품을 보고 고통을 느끼는 소수자의 몫이 아니라 논란을 각오하고서라도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던 창작자의 몫이다. 우리는 지금 음란에 대해서가 아니라 폭력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중이다.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
남은주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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