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
신라 경덕왕 때의 향가인 <제망매가>의 일부분이다. 숨진 누이를 그리워하는 애끊는 마음과 자연의 섭리에 대한 통찰이 잘 나타나 있다.
단풍과 낙엽의 계절이다. 단풍은 적극적인 드러냄이고 낙엽은 냉정한 헤어짐이지만 둘은 하나로 엮여 있다. 해가 짧아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잎자루와 가지 사이에 분열조직인 떨켜가 발달한다. 잎의 엽록소가 물과 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파괴되고 녹색에 밀려 숨어 있던 색소가 드러난다. 이것이 단풍이다. 엽록소 활동이 멈춘 잎은 가지에 붙어 있을 이유가 없다. 단풍은 낙엽의 예고편이어서 아름답다.
이 헤어짐은 단순한 조락이 아니라 낙성(落成)이다. ‘낙’은 글자 모양에서 보듯이 풀잎이나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이다. ‘성’은 창(戊·무)으로 진압하거나 화해하는 것을 말한다. 곧 낙성은 떨어짐으로써 이뤄내는 것이다. 나무는 겨울이 되기 전에 헌 잎을 버려 몸을 가다듬지 않으면 봄에 새잎을 얻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무의 진짜 모습은 낙엽이 진 뒤에야 드러난다. 이런 과정은 낙관을 해 글씨나 그림을 마무리하는 것과 통한다. 낙관은 낙성관지(-款識·새긴 글자)의 줄임말이다.
올해는 심각한 가을 가뭄으로 단풍에서 낙엽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원만하지 못한 나무가 적잖다. 선명한 색깔을 보여주기도 전에 잎이 말라버리거나 떨어져 마른 가지를 드러낸다. 그렇다고 낙성의 본질이 달라지진 않지만 물처럼 흘러야 할 섭리의 아름다움이 손상된 것 같아 안타깝다.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계속되고 있다. 이산가족들은 모두 제망매가를 쓴 월명사처럼 헤어짐의 아픔을 가슴 깊이 안은 채 살아왔다. 700만명이 넘는 재외동포의 상당수도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 낙성의 섭리가 깨진 지난날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새잎이 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지금 우리의 책임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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