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서북부 도시 알레포는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50여㎞ 떨어진 에블라에서 나온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자신의 존재를 기록할 정도로 유서가 깊다. 점토판은 기원전 2000여년의 것이다. 대략 기원전 6000여년부터 인류가 알레포에 거주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많다. 고대로부터 알레포는 지중해와 메소포타미아를 잇는 교역의 중심지였고 군사 요충지였다. 동방의 중국에서 생산된 비단이 거쳐 가는 길이기도 했다.
히타이트·아시리아·그리스·로마·우마이야·아이유브·몽골 등 여러 왕조와 제국이 거쳐 갔으며, 온갖 문명이 자신의 흔적을 도시에 새겼다. 1187년 십자군으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했던 살라딘(1137~1193)이 세운 아이유브 왕조 때 세워진 건축물이 많다. 둔덕에 성벽을 쌓고 주변에 해자를 판 알레포 성채는 특히 유명하다. 성채와 모스크 등이 있는 옛 시가지는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랐다.
시리아의 수도는 다마스쿠스지만 최대 도시는 알레포다. 2011년 3월 시리아에서 바샤르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시작됐을 때 알레포는 비교적 조용했다. 이후 시위가 내전으로 치달으면서 알레포는 2012년 7월부터 참혹한 전쟁터로 변했다. 도시는 반분돼 동부 지역은 반군, 서부 지역은 정부군이 장악하고 격전을 치렀다. 정부군은 헬기 등으로 통폭탄(barrel bomb)을 민간인 거주지역에 투하해 무차별 살상을 저질렀다. 양쪽은 이후 밀고 밀리는 소모전을 이어왔다. 세계문화유산인 옛 시가지의 60% 이상이 파괴됐다.
9월말부터 전세가 바뀌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공습을 등에 업고 정부군은 남쪽에서 알레포의 반군을 밀어붙이고 있다. 북쪽은 이슬람국가(IS)가 장악하고 있다. 정부군의 대공세가 예고되는 가운데 최근 한달 동안에만 알레포에서 수만명이 난민 대열에 합류했다.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살아온 도시들 가운데 한곳에서 또 잔인한 일이 벌어지려 한다.
황상철 국제뉴스팀장 rosebu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