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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박스들

등록 2015-11-11 18:55

겨울용 이불솜을 장만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해 택배로 받았더니, 내용물을 꺼내고 난 종이상자는 내가 들어가도 될 정도로 커다랬다. 이불솜을 싼 비닐봉투 한 겹에 비닐가방이 또 한 겹. 상자를 봉했던 테이프 뭉치까지 보태니, 좁은 집의 거실 한쪽을 거의 차지했다. 차곡차곡 끌어안고 버리러 나갔다. 누군가의 집으로 내용물을 품고 배달되어 사명을 다한 종이박스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매일 저녁 그곳엔 누런색 종이박스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텔레비전을 켜켜이 쌓아둔 백남준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고 표현한다면 조금 과장일까. 매일 저녁 택배회사의 컨테이너식 트럭들이 차례로 아파트 입구에 주차돼 있다. 택배기사들이 엘리베이터를 바쁘게 오르내리는 시간이다. 엘리베이터를 가득 메운 종이상자들은 거의 물건이 꺼내지자마자 버려질 것이다. 택배 상자만 그런 건 아니다. 장을 보고 나면 언제나 종이상자와 스티로폼과 포장 비닐을 벗겨내야 한다. 어쩔 땐 벗겨낸 포장들이 실제 물건들보다 부피가 더 크다. 어떤 과자는 종이박스 속에 다시 과자 하나씩 비닐 포장이 되어 있다. 포장값을 내고 과자를 사먹는 것임이 분명하다. 신문을 펼칠 때면 광고를 넘기느라 팔이 아파서 기사를 못 읽겠다던 어느 선배의 투덜거림이 떠올랐다. 비가 내렸던 지난 며칠 동안은 산처럼 쌓여 있던 종이상자들도 모두 젖어 있었다. 젖어도 그만일, 폐기된 것이 분명했지만 어쩐지 젖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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