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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별기고] 전쟁과 폭정이 더 두렵다 / 홍세화

등록 2015-12-17 19:03

이른바 ‘흙수저’로 태어난 젊은이들이 자신의 삶의 전망을 설계할 수 없는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점은 유럽의 젊은 세대도 한국의 젊은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 청년이 지하디스트가 된 과정은 ‘무슬림의 급진화’라기보다는 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급진세력의 무슬림화’에 가깝다.
2015년 11월13일, 130명의 사망자와 350여명의 부상자를 낸 파리 테러는 공격 대상을 정확히 갖고 있었던 9·11 테러와 달리 눈먼 테러였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즉각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그 기간을 3개월 연장했고,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애국법을 밀어붙였던 미국의 부시처럼 테러와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한겨레>가 세월호 참사로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들을 박재동 화백의 그림과 함께 추도했듯이, <르몽드>도 매일 다섯명씩 희생자들을 기리는 친지의 글을 사진과 함께 실었다. 한국 정부와 여당은 파리 테러를 빙자하여 테러방지법을 입법하려고 획책하고 있다. 선거 조작을 위한 댓글 공작을 잘하고 간첩을 조작하는 능력을 가진 국가정보원이 테러까지 조작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이 자리를 빌려 강조하건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테러가 아니라 전쟁과 폭정이다. 우리가 전쟁을 겪었으며 오랫동안 폭정(박근혜 정권 아래 지금도 진행 중인)에 시달렸음을 잊을 수 없거니와 한국은 세계체제의 중심부인 미국이나 유럽도 아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 이후 “전쟁을 일으키되 겪지 않는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 전략은 그들이 벌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앞으로 그들은 지상군 파견을 최소화하면서 대리전으로 대신하거나 공중에서 투하하는 폭탄 중심으로 전쟁을 벌일 것이며 따라서 민간인 희생자 비율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주변부에 속하는 시리아는 지난 4년 동안 20만명이 넘는 국민이 아사드 정권의 폭정과 전쟁으로 희생되었는데 파리 테러와 달리 그들의 비참한 상황은 언론에도 잘 비치지 않는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테러가 아니라 전쟁과 폭정이라는 점은 “‘아랍의 봄’ 이전에 시리아인들이 두려워했던 게 테러였을까, 전쟁과 폭정이었을까?”라는 질문 하나를 던지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와 여당은 남북 사이의 긴장상태를 완화시키기보다는 악화시키는 방향으로만 가고 있다. 테러방지법도 그 일환 아니겠는가.

얘기가 다른 데로 흘렀다. 이번 파리 테러가 9·11 테러와 다른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점은 9·11 테러가 사우디아라비아 국적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외부 세력의 소행이었다면, 파리 테러는 무슬림 부모 아래 프랑스나 벨기에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녔으며 프랑스나 벨기에 국적을 갖고 있는 내부 구성원 출신이 저질렀다는 점이다. 가령 파리의 바타클랑 공연장 테러의 범인인 푸에드 모하메드 아가드는 부모가 알제리인과 모로코인으로, 1992년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 근교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의 경찰이나 직업군인이 되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식당 알바, 건설 일용직, 철공소 일을 전전했던 그가 결국 지하디스트의 일원이 되었던 과정은, 프랑스의 한 분석가가 지적했듯이, ‘무슬림의 급진화’라기보다는 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급진세력의 무슬림화’에 가깝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5천명 정도로 추산되는 유럽 출신 이슬람국가(IS) 대원 중 1800여명이 프랑스 출신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들이 테러리스트라는 악의 화신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면,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그들을 관용하거나 그들에게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는 당연한 전제 아래, 그들의 존재는 국제정치에서 강자 마음대로인 ‘힘의 정의’만이 실현되는 데서 오는 분노와, 유럽의 경제통합이 사회적 소수자·저소득층에 대한 사회통합에 실패했음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른바 ‘흙수저’로 태어난 젊은이들이 자신의 삶의 전망을 설계할 수 없는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점은 유럽의 젊은 세대도 한국의 젊은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파리 테러가 12월5일과 12일에 치러진 프랑스의 광역 지방선거에서 극우파 국민전선(FN)의 약진에 이롭게 작용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테러 이전부터 국민전선은 이미 프랑스 서민 계층과 하층 노동자 계급에게 제1당이었다. 비록 2차 결선투표에서 지방 행정부를 장악하는 데에 실패했지만, 1차 투표의 분포(국민전선 28%, 우파 27%, 사회당 21%…)로 볼 때 국민전선은 프랑스의 공공연한 제1당이었다. 우리가 만약 극우파를 지지하는 프랑스 국민 30%에게 인종주의자나 파시스트라는 딱지를 붙일 수 없다면, 이런 결과를 낳은 배경과 이유를 다른 데서 찾아야 마땅하다. 요컨대, 프랑스 국민이 국민전선을 지지하게 된 동기는 실업, 구매력 저하, 빈곤 상태 지속 등 경제적·사회적 문제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우파 집권세력과 똑같이 사회당 중심의 좌파 집권세력 또한 유럽연합의 지침과 금융자본에 복속되어 기층 인민을 버렸다. 이 틈을 국민전선이 선동적 포퓰리즘과 이슬람 혐오의 기치로 치고 들어온 것이다. 다시 말해, 정치세력으로서 국민전선이 강력해진 주된 배경을 지난 30년간 금융자본과 결탁한 위정자들이 정치를 실종시킨 결과물로 봐야지, 프랑스 국민의 파시스트화에서 찾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국민전선 당수인 마린 르펜은 그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이 ‘반이민’을 표방했던 것과 달리 ‘반무슬림’을 기본 전술로 활용하고 있다. ‘반유대’도 포함되었던 ‘반이민’에서 벗어나 무슬림을 주공격 대상으로 삼아 표를 얻는 동시에,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된 뒤 ‘문명 충돌’을 강조하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에서 보듯 무슬림 세계에 대해 이중잣대를 관철시키는 세계의 지배질서에 부응함으로써 통치자로서의 자격에서 배제되지 않겠다는 속셈이 담겨 있다. ‘반이민’은 그 자체로 반인권적 성격을 갖고 있어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만 ‘반이슬람’은 달리 느껴질 여지가 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유럽의 모든 극우정당들은 ‘반무슬림’을 매개로 다에시(Daesh/Daech, ‘이슬람국가’의 아랍어 명칭)와 적대적 공생관계를 누리고 있는데, 돌이켜 보면 프랑스에서 ‘이슬람 혐오’는 다에시 이전부터 주류 언론과 문화인들에 의해 유포되어 왔다. 베스트셀러였으며 <르몽드> 1면에 소개되기도 했던 <복종>의 저자 미셸 우엘베크나, 80년대에 반인종주의 단체인 ‘SOS 인종주의’에서 활약했으나 지금은 반무슬림 극우 인사로 변신한 신철학파의 알랭 핑켈크로트가 비근한 예에 속한다.

위기는 항상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법, 유럽의 지배세력은 반무슬림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신자유주의 기조가 낳은 정치의 실종, 사회통합의 실패를 가리고 있다. 이와 같은 정치의 실종, 사회통합의 실패는 젊은 세대의 탈정치화를 불러왔다. 이번 광역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18~24살의 프랑스 유권자만 따로 놓고 보면, 이들 중 65%가 기권했고, 투표자 중 3분의 1이 국민전선을 찍었으며, 이어 사회당(21%), 우파(20%)에 투표했다. 젊은 세대의 이와 같은 탈정치적인, 나아가 반체제적인 성향은 대도시 외곽의 저소득층 지구에서 함께 사는 기층 인민계급과 무슬림 출신 사이에 적대적 경계를 짓게 할 위험이 작지 않음을 보여준다.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장발장은행장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장발장은행장
9·11 테러 이후 “테러 이전과 이후가 다를 것이다”라는 말이 나왔듯이, 프랑스 신문 지면에는 ‘바타클랑 세대’라는 말이 등장했다. 파리 테러는 앞으로 무슬림을 적대하는 지배의 도구로 동원될 것인가, 아니면 정치를 회복시키고 국제정의를 실현하여 사회통합의 길로 이끌 변곡점이 될 것인가.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장발장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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