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일을 맡았다. 다른 사람들이 선정한 책들 중에서 한두 권의 책을 다시 골라야 했다. 추천된 책들을 다시 읽어보아도 고르고 싶은 책이 없었다. 어떤 과학책은 나 같은 문외한도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생활에 밀접하게 연루되어 있는 현상들을 읽기 쉽게 다루었다. 읽기 쉽게 다루었다는 점 때문에 그 책은 올해의 책이 될 만큼 가치 있다 판단되지 않았다. 복잡하더라도, 복잡하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감당하는 책이 더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인문학 책은 모두가 존경할 만한, 이미 저자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 된 책이었다. 좌담 혹은 대담, 여기저기에 기고했던 짤막한 산문들을 끌어모은 책이었다. 저자의 모든 발언을 경청하고 싶어 일찌감치 읽어둔 책이지만, 올해의 책으로 꼽자니 망설여졌다. 일정한 주제로 기획되고 연구된 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꼽고 싶은 책은 리스트에 오르지 못했다. 우선 읽기가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학술서적처럼 고루한 문장으로 채워져 있지는 않다. 정확한 논리를 단호한 문체로 차근차근 펼친다. 우리가 상실해버린 가장 값진 근본에 도달해 이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이제 와서 이 책을 추천한다 말해도 되는 걸까. 그래서는 안 된다. 여태껏 유지해온 선정작업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일 것이다. 올해의 책이라고 동의할 수 없는 책을 고르는 일 또한 나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어째야 할까.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