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홋카이도)에서 열흘 정도를 지냈다. 열흘 동안 낮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밤에는 티브이도 보았고, 영화도 보았고, 원고도 썼고, 두꺼운 책을 세 권이나 읽었다. 북해도는 오후 세시 반 정도부터 일몰이 찾아왔다. 점심을 먹고 차 한잔을 마시고 거리를 걷다 보면 어둑어둑해졌다. 일찌감치 도착하는 밤이 제법 길게 느껴졌다.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게 얼마 만인가 싶어, 긴 시간을 좀 더 길게 느끼려고 책을 손에 들었다. 기나긴 밤이 주는 집중력. 무슨 책을 가져왔어도 집중하며 흡입할 것 같았다. 세 권 모두 읽다 만 책들이었다. 몇달 동안 책상 위에 올려두었지만, 하루에 몇장 정도를 넘기면 집중력이 흐려져 나중에 읽어야겠다며 포기했던 책들이었다. 어쩐지 북해도에서는 완독을 할 것만 같은 기대가 생겨 여행가방에 가장 먼저 챙겨두었던 것이다. 꼼꼼히 독서를 하던 밤들이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오롯하게 떠오른다. 좋은 구경거리를 찾아다니던 낮 시간의 일들은 지금 기억 속에서 희미하다. 오직 카메라만이 그걸 간직한 셈이 되었다. 대신, 길고 긴 밤 동안에 읽었던 책들이 머릿속에 꽉꽉 들어차 있다. 책을 읽었던 밤의 북해도가 내 기억들을 에워싸고 있다. 서울은 오후 다섯시 반 정도에 일몰이 시작된다. 북해도의 일몰 시간과 겨우 두시간 차이일 뿐이다. 내가 갈망했던 것은 여행이 아니었다. 하루 24시간 중 단지 두시간, 아무 할 일 없는 고요함이었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