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화폐는 앞뒷면을 엄밀하게 따지지 않는다. 예컨대 건물이나 자동차의 경우와는 확연히 다르다. 대신 어느 나라나 동전의 양쪽 가운데 한쪽을 골라 ‘헤드’(head)라 부르는 경향이 있다. 과거엔 동전의 한쪽에 그 화폐를 발행할 당시의 군주의 얼굴을 새겨 넣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주의 위세가 높아 화폐가치가 안정적인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화폐가치의 몰락이 땅바닥에 떨어진 군주의 위신을 고스란히 반영하던 때도 있었다.
화폐의 기원을 두고선 견해가 크게 두 갈래로 엇갈린다. 대체로 주류적 견해는 오로지 물물거래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여러 상품 중 교환가능성이 가장 큰 하나를 골라 자연스레 화폐로 사용했다고 본다. 대표적인 게 마모도 적고 들고 다니기도 쉬운 금과 은이다. 하지만 오랜 화폐 역사를 돌아보면 이와는 다른 흔적도 자주 발견된다. 우리나라만 놓고 보더라도, 위화도 회군에 성공한 이성계는 화권재상(貨權在上)을 부르짖으며 저화(楮貨)라는 이름의 종이돈을 유통시키려 했다. 스웨덴의 ‘크로나’,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크로네’ 등과 같은 화폐 단위는 화폐란 무엇보다도 국가권력의 산물임을 엿보게 해준다. 헤드라는 전통 역시 마찬가지다. 주류적 견해가 사회 구성원의 선택을 강조하는 일종의 진화론이라면, 또 다른 갈래는 권력의 의지와 공동체의 약속에 무게를 둔 창조론이라 할 만하다.
가상화폐·전자화폐·비트코인·사이버머니….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다양한 화폐 실험들이 이어지고 있고, 덩달아 화폐의 ‘종말’을 전망하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화폐의 본성은 소재가치의 종류나 그 존재 여부만으로 따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화폐란 가장 중요한 사회제도(약속체계)이며, 동시에 해당 국가 행정(조세)권력을 지탱하는 근간이다. 만일 비트코인으로 세금을 납부할 수 없다면, 엄연히 그건 화폐가 아니다.
최우성 논설위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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