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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미-중 ‘그레이트 게임’과 북핵

등록 2016-01-27 18:40수정 2016-01-27 18:40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새해 첫 순방 일정으로 지난주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이란을 찾았다. 중동 지역의 핵심 나라들이다. 그가 현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중동 평화의 건설자, 중동 발전의 추동자, 중동 공업화의 추진자, 중동 안정의 지지자, 중동 민심의 협력동반자 역할을 맡겠다.” 의심스러운 미국을 대신해 중동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모두 떠맡겠다는 야심찬 발언이다. 그는 수십조원 규모의 돈보따리를 들고 갔다. 과거 미국이 달러와 군사력으로 패권을 확장해가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26~27일 중국을 방문하기 직전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찾았다. 둘 다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다. 라오스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의장국이기도 하다. 남중국해의 패권을 두고 중국과 대립하는 미국이 교역 확대 등을 무기로 동남아의 ‘친중국 벨트’를 흔드는 모양새다.

미국과 중국의 이런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됐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본격화한 ‘그레이트 게임’이다. 지구촌 전체가 무대지만 특히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이 주요 전장이다. 이들 지역은 중국이 자신의 생명선으로 설정한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가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은 갈수록 거세진다. 미국은 중국이 요구한 신형대국관계도 사실상 거부했다. 그레이트 게임은 이제 모든 미-중 관계를 규정한다.

북한이 전격적으로 4차 핵실험을 한 지 3주가 됐다. 이후 논의 역시 그레이트 게임의 자장 안에 있다. 미국은 중국역할론을 되풀이한다. 이는 중국책임론의 다른 말이다. 중국이 잘못해서 북한이 ‘나쁜 짓’을 계속하고 있으니 중국이 책임지고 북한을 혼내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논리다. 중국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레이트 게임의 원리에 근본적으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중국이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한 책임을 떠맡는 순간 대미 전선의 중요한 한 축이 무너져내린다.

중국은 거꾸로 미국책임론을 말한다. 논리적으로는 이쪽이 더 근거가 있다. 북한이 핵 개발의 주된 이유로 내세운 것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지 중국이 아니다. 게다가 미국은 여러 해 동안 북한 핵 문제를 사실상 방치함으로써 더 악화시켰다. 나아가 미국은 북한 핵 문제를 그레이트 게임의 주요 소재로 활용한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중요한 대들보인 한-미-일 안보·군사 협력이 착착 진전되는 것만 해도 미국으로선 큰 성과다.

지금 핵실험 대응책을 놓고 공방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주된 목표는 이미 핵 문제 해법에서 벗어나 있다. 이런 상황은 두 나라 사이에 이른바 대타협이 이뤄지지 않는 한 북한 핵 문제의 해법 모색이 어려움을 보여준다. 대타협이 되려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레이트 게임을 중단하기로 합의해야 한다. 서로를 자극할 수 있는 행동을 피하고 북한 핵 문제를 최우선의 공동 과제로 설정하는 것이 시작이다. 그런 바탕에서 미국은 적극적으로 핵 협상에 나서고 중국이 대북 개입을 강화한다면 핵 문제는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지금대로라면 북한 핵 문제는 관련국 모두에게 더 큰 부담이 되면서 미-중 대결도 격화하는 길로 가게 될 것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우리나라가 해야 할 일은 미-중 대타협이 이뤄지도록 하는 매개자·촉진자 역할이다. 우리가 두 나라보다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할 수 있다. 미국과 손잡고 중국을 압박하는 데 앞장서는 것은 미-중 대결과 핵 문제 악화에 기여할 뿐이다. 결국 북한을 붕괴시켜야 핵 문제가 해결된다는 근본주의적 사고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은 동북아에서 가장 약자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그레이트 게임에 집중할수록 독자적인 입지를 유지·강화할 여지가 커진다. 이런 구도를 바꿔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도발적인데다 비전도 없는 ‘6자회담 무용론’이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 한반도 배치론’ 따위가 아니라 미-중 대타협을 위한 설득에 나서는 것이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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