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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공무집행

등록 2016-02-03 19:41수정 2016-02-03 19:45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체증이 일어났다. 내 차선에서만 유독 길이 막혔다. 승합차 한 대가 정차되어 길을 막고 있었다. 이런 우회전 코너에 누가 정차를 하나 싶어 흘낏 째려보게 되었다. 차의 측면에는 ‘공무집행’이라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 차에서 내렸을 법한 두 남자가 가로수 사이에 현수막을 매달고 있었다. 설날 인사를 주민들에게 건네는, 별것 아니라면 별것 아닌 내용이었다. 몇 개의 현수막이 더 있을 테고, 다른 코너 다른 가로수에도 똑같은 현수막이 설치됐거나, 될 것이다. 아마도 매번 불법주차를 자신있게 할 것이다. 지나가는 다른 차량들이 불편을 겪을 테고, 나처럼 잠시 째려보느라 정차된 차를 살펴볼 것이다. 그럴 때 ‘공무집행’이라는 네 글자는 어떤 생각을 낳게 할까. 공무집행 중이니까, 저것은 불법이 아니고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공무원들의 업무일수록 더 준법적이어야 한다고 혀를 쯧쯧 차게 될까. 다른 직종의 사람들이 교통 흐름을 방해하며 정차하고 있었을 때와 달리, 판단이 복잡해진다. 공무집행일수록 더 준법적일 필요까지는 없지만, 공무집행도 준법적이었으면 싶다. 공무원이 되었든 경찰관이 되었든, 그 어떤 직업이 되었든 간에, 법 앞에서 특권을 누리는 이런 모습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미개하고 아직도 멀었다는 좌절을 느끼게 한다. 작은 일이었지만, 멀고 멀었다는 좌절에 대한 객관적 측량은 큰일을 겪었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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