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친구 집에 놀러 가는데 빈손으로 가기 뭣해 국숫집에서 국수 한묶음을 샀다. 쑥을 넣은 쑥국수를 골랐다. 재래식으로 국수를 뽑고 널어 말려서인지, 국수맛이 남다른 가게였다. 진열장에 쌓아둔 국수들과 국수 만드는 공정이 담긴 팸플릿을 구경하며 한참을 매장에서 서성였다. 주인은 내가 쳐다보는 것을 함께 쳐다보며, 자신이 알려주고 싶은 것들을 설명했다. 대를 이어 이 일을 해온 자부심이 얼굴에 묻어나왔다. 나는 ‘잘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서너 차례 꾸벅거리며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나도 모르게 그랬다. 오늘은 화초들을 분갈이해주기 위해 흙을 사러 동네 비닐하우스 화원에 찾아갔다. 어마어마한 종류의 다육식물을 마치 식물원처럼 보유한 비닐하우스에 들어갔다. 비닐하우스를 어슬렁대며 하나하나 식물들을 구경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세 가지를 골라서 흙과 함께 샀다. 주인은 하나하나마다 사인펜을 들고 이름표를 써서 꽂아주었다. 이걸 다 외우시냐고, 여기 있는 이 수백 종을 다 외우시냐고 여쭈었다. 다 외우긴 외우는데 가끔은 기억이 안나는 이름들도 있다며, 겸손한 대답을 할 때에 나는 “와, 전문가시네요” 하고 존경을 표했다. 주인은 마사토 두어 삽을 더 퍼서 담아주며 내게 봉지커피 한잔 권했다. 커피를 받아들고 식물원에 온 듯 앉아 있었다. 오늘도 나는 ‘잘 키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또 올게요’ 서너 차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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