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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병원비 불안 없는 나라 / 김양중

등록 2016-04-19 19:14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어도 2014년 기준 병원비의 63% 정도만 건강보험에서 내주고, 나머지는 환자 몫이다. 병원비가 100만원 나왔다면 37만원은 환자가 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정도 지원 비율은 가벼운 질환이라면 환자들의 부담이 크지 않지만, 갑작스러운 중병으로 수천만원의 병원비가 나오면 특히 서민층 환자들이 이를 내기에는 부담이 매우 크다. 전셋집을 빼거나 은행 등에서 돈을 빌리다가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하며, 가계 파산에 이르기도 한다. 가계 파산에 이를 정도로 재난적 의료비를 내야 하는 가계 비율이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에 견줘 낮기는 하지만 2008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회원국 평균의 7배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을 정도다. 결국 건강보험이나 정부 등 공공부문에서 지원하는 의료비 비중이 낮다는 얘기인데, 2014년 오이시디 보건의료 자료를 보면 국민의료비 가운데 공공부문 지출 비율은 오이시디 평균이 72%이고, 우리나라는 55% 수준이다. 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우리보다 낮은 나라는 미국과 칠레뿐이다. 높은 나라에 속하는 덴마크나 노르웨이는 85% 이상인데, 이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아파도 병원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진료비 지원 비율이 낮다 보니,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자구책으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했다. 금융감독원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우리 국민 5명 가운데 3명꼴인 약 3150만명이 실손형 보험에 가입해 있다. 실손형 보험을 비롯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가구 비율은 2012년 기준 약 80%에 이르며, 가구당 4.64개를 가입해 월평균 약 34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있었다. 2014년에 가구당 월평균 건강보험료가 9만1천원인 것에 견줘보면, 민간의료보험에 3배의 돈을 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실손보험의 경우 보험금 지급이 크게 늘어나 손해를 많이 본다며, 보험료를 20~40%가량 올렸다. 민간보험사의 손해를 산정하는 방식을 보험 가입자들은 잘 알 수가 없으니, 보험료를 올려도 어쩔 수 없이 내고 있다. 그런데 건강보험공단이 민간보험사의 손해율 계산 방식을 봤더니, 민간의료보험이 중심인 미국과는 달리 보험사에 유리하게 책정돼 있다고 한다. 미국식 계산법으로는 20%가량 이익을 보고 있었다. 건강보험의 경우 가입자가 평균 10만원을 내고 18만원가량을 돌려받는 것에 견줘 보면, 민간보험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가 보험회사만 살찌운다는 비판도 나온다. 조만간 금융당국이 민간보험사의 손해에 대해 점검을 해본다고 하니 이를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민간보험을 가입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60%대 초반에 머무는 건강보험의 병원비 지원 비율을 유럽의 많은 복지국가처럼 80% 이상으로 올리면 된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현재 많은 가구에서 가입해 민간의료보험에 내는 보험료를 건강보험으로 돌리면 지금보다 덜 내고도 유럽 복지국가처럼 병원비 불안 없이 살 수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료 부과방식의 문제를 고치지 않고서는 국민들을 설득하기 힘들다. 소득과 재산이 많아도 가족 중 누군가의 피부양자가 되면 건강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내고, 소득이 없어도 전월세에 살아서 재산이 있는 것으로 평가돼 한 달에 5만원씩 낸다면 건강보험료를 더 내기는커녕 현재 보험료를 내기도 싫을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야 3당이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선하겠다고 공약했다. 당장 ‘세 모녀’와 같은 서민들의 보험료 부담을 덜고 많이 버는 이들에게는 보험료를 더 걷어, 건강보험 혜택을 넓힐 기초이니 꼭 지키길 바란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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