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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브렉시트, 유럽의 위험한 세력균형 게임

등록 2016-04-27 20:11수정 2016-04-27 21:57

오는 6월23일 영국의 유럽연합 잔류를 묻는 국민투표는 유럽 지정학의 갈림길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즉 브렉시트가 결정되면, 근대 이후 유럽의 본질적 문제인 ‘독일 문제’와 ‘러시아 문제’가 또 노정될 것이다. 유럽을 위협하던 두 나라의 존재가 다시 부각될 수 있다는 거다.

유럽 통합은 1871년 독일 통일부터 1991년 소련 붕괴까지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긴 분쟁과 전쟁의 산물이자, 유럽의 자구책이었다. 근대 이후 유럽의 지정학적 질서는 ‘세력균형’이었다. 유럽의 열강이 서로를 견제하거나 협력하며, 유럽에서 압도적 패권국가 출현을 저지해 질서를 유지하는 체제였다. 유럽의 세력균형 질서는 1871년 독일 통일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유럽 대륙 한가운데에서 인구·경제·군사적으로 우월한 통일 독일의 출현은 결국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귀결됐다. 2차대전 뒤 독일 문제는 독일 분할로 조정됐다. 하지만 그 대가는 소련으로 재탄생한 러시아 문제의 증폭이었다. 유럽 대륙의 절반은 소련에 점령됐고, 남은 서유럽은 미국에 운명을 위탁했다. 유럽은 미-소 양극 질서의 종속물이었다.

독일과 프랑스는 과거의 갈등을 막고 소련의 위협에서 생존하려고 유럽 통합에 나섰다. 머뭇거리던 영국도 1973년 이에 가담했다. 1990년을 전후해 독일이 다시 통일되고, 소련은 붕괴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이미 경제력에서 압도적인 독일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유로 공동통화 도입 및 유럽연합 출범을 서둘렀다. 헬무트 콜 당시 독일 총리도 독일의 정치적 지위 모색을 위해 유럽연합을 적극 추진했다.

25년이 지난 지금 유럽연합에서 독일은 파트너인 프랑스를 압도하는 주도 국가가 됐다. 그리스 구제금융 사태에서 보여준 독일의 모습은 독일 패권을 우려하는 비난을 자아냈다. 유럽의 난민 위기는 독일이 좋든 싫든 지도력을 행사하지 않고는 유럽연합이 지탱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도 ‘유럽의 독일이냐, 독일의 유럽이냐’라는 근본 문제가 다시 대두됐다고 우려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도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내전을 일으켜, 유럽에 ‘러시아 문제’가 다시 조성됐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에도 개입해, 중동에서도 지분을 챙기는 등 국제무대에서 한 축으로 복귀하려 한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이후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중시’ 정책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전력을 이동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라도 대서양 양안 동맹은 미국의 세계패권을 유지하는 중심축으로 지속돼야 한다. 유럽 통합을 옛 소련권까지 확장해, 대서양 동쪽의 동맹에 빈틈과 잡음을 없애야 한다. 이는 유럽 대륙에서 러시아의 부상 등 패권 국가의 출현을 막는 방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경제·난민 위기로 구심력이 떨어진데다, 영국의 탈퇴까지 현실화하면 독일의 힘에 더욱 기댈 수밖에 없게 된다. 미국의 외교전략가인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크렘린이 유럽연합을 약화시키려고 브렉시트를 환영하고 유럽 국가들의 국내 정치에 간섭하려 할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다시 유럽을 세계대전 전의 세력균형 질서로 회귀시킬 것이다. 문제는 그 세력균형 질서가 다시 독일과 러시아라는 두 나라의 게임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정의길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정의길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영국은 전통적인 ‘영예로운 고립’ 노선으로 유럽 대륙 세력균형의 조정자 역할을 노리겠지만, 그건 착각이다. 현재 유럽에서 영국의 존재는 미국의 강력한 동맹으로서만 의미가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유럽에 대한 미국의 개입력만 약화시킬 것이다. 현재로선 영국은 국민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유럽연합에 잔류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유럽연합은 이전의 유럽연합이 아니다. 유럽은 다시 위험스러운 세력균형 게임으로 다가서고 있다.

정의길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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