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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트럼프 현상은 미국을 개혁할 수도 있다

등록 2016-05-18 21:36

도널드 트럼프가 막말로 대중의 불만을 자극해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됐다고 생각하면 큰 실수이다. 그는 막말만 하지 않았다. 공화당의 보수적 가치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대표적 잣대인 사회복지를 보자. 그는 공화당이 줄기차게 삭감하려는 미국의 노후연금 소셜시큐리티, 약자와 저소득층의 의료보장제도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를 절대 축소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는 다른 모든 공화당원처럼 소셜시큐리티를 축소하지 않을 것이다.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도 축소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은 그의 선거광고에서 단골 멘트이다. 그는 출마 선언을 하기 전인 2011년 12월 발간한 저서 <강해져야 할 때>에서 소셜시큐리티 등에 대해 “그건 혜택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계약이다”라며 “우리 사회는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안전망을 제공하는 데 강철 같은 약속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무모한 해외 군사개입을 반대한다. 그는 “나는 (시리아에서 작전 수행을 하는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해야 한다고 위협하는) 그들을 강경파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멍청이들이라고 부른다”고 말한다.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 주류가 적극 지지하는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한다.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을 개정하고, 현재 추진 중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과의 무역에서 막대한 흑자를 올리는 중국 제품에 대해 관세를 올리고,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미국 기업을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교역 정책은 민주당 좌파와 비슷하다. 버니 샌더스도 자유무역협정의 재고를 촉구하고, 미국 내의 일자리 보존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그는 사회문제에서 보수적이다. 이민, 낙태, 총기 소유, 동성결혼 등에서 그렇다. 그렇지만 이민 하나만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회문제에서는 공화당보다는 융통성을 보인다. 낙태한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연방정부의 가족계획 프로그램 확대를 지지한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은 테러분자 감시 명단에 오른 사람들의 총기구매 여부에 관한 토론 자체를 테러와의 싸움을 흩트리는 것이라고 꺼리나, 트럼프는 그들의 총기 접근을 막아야만 한다는 ‘브레이디 캠페인’ 등 총기규제 단체의 주장에 동의한다. 게이의 권리도 일부 인정한다.

트럼프는 많은 사안에서 일관성이 없이 오락가락한다. 대표적으로 세금 문제와 관련해, 부자 증세도 가능하다고 말했다가 없던 일로 해버렸다. 현재의 트럼프는 물론 재앙이다. 그의 인종주의적 공약은 미국의 사회 갈등을 폭발시키고,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것이다.

그런 그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일차적으로 공화당의 책임이다. 보수적인 중하류 백인층을 보수화 정책으로 자극하면서 표를 얻으면서도, 경제정책에서는 상류층만을 위한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는 이를 이용했다. 이민 등에서는 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사회복지 등에서는 진보적인 입장으로 이들을 끌어당겼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주도한 글로벌리제이션이 미국에서도 저학력, 중하류 계층의 일자리와 소득을 감소시킨 사태가 그를 부상시켰다. 이는 이미 유럽에서 좌우파 포퓰리즘 세력을 부상시켰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이제 미국이나 세계는 강자만 더욱 강해지는 현재의 글로벌리제이션 조류를 방치할 수 없는 시점이 됐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그 시금석은 트럼프를 배태한 공화당이 바뀔 수 있느냐다. 공화당은 트럼프를 순치시켜 백악관을 탈환하는 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에 열광하는 미국 대중들의 욕구를 반영하는 개혁을 해야 한다. 적어도 아이젠하워와 닉슨의 실용주의 공화당으로 돌아가야 한다. 트럼프 현상은 공화당과 미국을 개혁할 기회이자 위기이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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