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6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의 <나(I), 다니엘 블레이크>에는 스코틀랜드의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와 가난한 이웃들이 나온다.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병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연금을 받으려 한다. 그러나 곧 사람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면서 복지혜택을 받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니엘의 이웃, 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 살아가는 케이티의 형편은 더욱 좋지 않다. 영국 <가디언>의 한 기자는 리뷰에서 케이티가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푸드뱅크에 갔다가 그만 이성을 잃어버리고 진열대 위에 있던 통조림을 뜯어 마구 삼키는 장면에서 울었다고 했다. 그는 “이 영화가 개봉되면 다른 영국 사람들도 우리의 수치와 공감을 자극하는 푸드뱅크 장면에서 울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공감하는 대목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프랑스 칸에서 영화가 상영될 때 많은 관객들은 다니엘의 운명을 보면서 울기도 했고, 일부는 나처럼 케이티가 마트에서 생리대를 훔치는 장면에서 눈물을 닦았다.
케이티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다가 그를 수상하게 보던 경비원에게 불려간다. 케이티의 주머니에서 몰래 넣은 생리대와 여성용 제모기가 나왔다. 이 젊은 어머니는 얼마 되지 않는 생계비로 아이들에게 줄 빵을 살 수 있었지만 여자로서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물건들은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느껴야 했던 수치심과 망가진 자존감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최근 한국에서도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서 휴지나 신발 밑창을 생리대로 쓴다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의 사연이 퍼졌다. 이 사실은 한 생리대 회사가 다음달부터 생리대 값을 올린다는 보도가 나오자 트위터에서 여자들이 하나둘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의 경험담을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알려졌다. 생리대 값이 없어서 한달에 일주일씩은 학교를 빠지고 수건 한 장을 깔고 집에 누워 있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어머니가 없는 어떤 소녀는 생리대 이야기를 꺼낼 사람이 없어서 신발 밑창을 옷 속에 넣어 다녔다고 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다니엘의 이웃이나 관객들이 충격을 받은 이유는 케이티가 통조림이나 생리대를 훔칠 때까지는 아무도 그가 그토록 배고프고 곤궁한 상태인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현실에서 한국의 청소년들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생리대 자체가 너무나 중요하고 은밀한 문제여서가 아니다.
많은 헌법학자들은 수치심은 인간 존엄성을 저해하는 감정이며 시민이 수치심을 겪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은 사회의 의무라고 주장한다. 미국 법학자이면서 여성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책 <혐오와 수치심>에서 “죄책감은 행위에 초점을 맞추지만 수치심은 인격에 주목한다”고 지적하면서 “(누군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주거 환경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했다. 같은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과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그토록 필사적인 노력을 해야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 타인의 빈곤과 인권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했던 우리도 죄책감이 아니라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얼마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저소득층 소녀들에게 생리대를 후원하는 크라우드펀딩이 진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저소득층 소녀들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어디 생리대뿐이겠는가. 또 생리대 값조차 없을 만큼 가난하고 무기력한 여자들이 빈곤 청소년뿐이겠는가.
생리대는 복지가 아니라 인권이다. 복지 항목들이 경제적 필요뿐 아니라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요소들로 설계돼 있는지 세심히 살펴야 할 이유를 알려준 사건이다.
남은주 대중문화팀 기자 mifoco@hani.co.kr
남은주 대중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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