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제도가 시행된 지 내년이면 30년째가 된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적어도 기금의 규모 면에선 눈부신 성장을 해왔다. 1988년 5300억원으로 출발해 2003년 100조원, 2010년 300조원, 2015년 500조원을 돌파했고 올해 3월말 기준 524조원에 이른다. 특히 지난해에는 일본의 공적연금펀드(약 1360조원)와 노르웨이의 국부펀드(약 1050조원)에 이어 세계 3위의 연기금에 올랐다. 국민연금이 이렇게 급성장한 것은 가입이 법적으로 의무화된 공적연금이기 때문이다. 현재 2153만명의 국민들이 매달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고 있다. 걸핏하면 ‘국민연금 고갈론’이 나와 불안감을 키우지만, 고령화시대에 노후 대비 방법이 달리 마땅치 않다. 통계청의 ‘2015년 사회 조사’를 보면, 19살 이상 가구주 중 73%가 노후 준비를 하고 있는데 55%가 그 수단으로 국민연금을 꼽았다.
그만큼 국민연금공단의 임무가 막중하다. 국민들의 노후 생활을 책임져야 할 곳간을 튼실히 불려나가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은 채권에 299조원(56.9%), 주식에 167조원(31.8%) 등을 투자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5대 원칙은 수익성, 안정성, 공공성, 유동성, 독립성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기금의 안정성을 지키면서 공정하고 투명한 방법으로 가능한 한 높은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주 나온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보면,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선 원칙과 정반대로 움직였다. 합병 전엔 삼성물산 주식을 저가 매도하고 합병 뒤엔 고가 매수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투자다. 또 합병비율이 불리한데도 합병에 찬성해 손실을 입었다. 삼성그룹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국민 전체의 이익을 도외시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또 이런 모습에 많은 국민들이 “정말 이래도 되나”라며 강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 같다.
안재승 논설위원 jsah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