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엔 ‘14년 법칙’이란 게 있다. 주지사나 연방 상원의원, 부통령에 당선된 뒤 14년 이내에 대통령이 되어야지, 14년을 넘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징크스다. 정치 평론가인 조너선 라우시가 2003년 유명 정치잡지 <내셔널 저널>에서 처음 이 ‘법칙’을 주장했다.
거창한 과학적 근거를 갖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설명을 들어보면 나름의 타당성은 있다. 왜 14년일까. 일종의 ‘정치인 유통기한’이다. 라우시는 “소비자들이 묵은 우유를 외면하고 새 우유를 찾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한다. 상원의원과 주지사는 포함하면서 하원의원을 ‘14년 경력’에서 뺀 이유는 이렇게 설명한다. “유권자들이 하원의원은 대통령 후보감으로 보질 않는다. 주지사나 상원의원이 돼야 비로소 잠재적 대선 후보군에 포함된다.” 1980년 이후 당선된 미국 대통령에 이 ‘법칙’을 적용하면 레이건은 14년, 아버지 부시는 8년, 빌 클린턴은 10년, 아들 부시는 6년, 오바마는 4년 만에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이걸 바꿔 말하면, 대통령 자질로 흔히 경륜을 꼽지만, 실제 대통령이 되는 데엔 경륜보다 신선함이 훨씬 중요하다는 얘기다. 라우시는 이를 ‘정부 신뢰의 하락’과 연관이 있다고 봤다. 날이 갈수록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주요 공직 경험이 오히려 유권자들에겐 덜 매력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1980년 이후 미국 대선에서 승자와 패자의 공직 경력을 비교하면, 예외 없이 공직 경력이 짧은 사람이 승리했다고 한다.
이 ‘법칙’을 올해 미국 대선에 적용하면 어떨까.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은 2000년 11월 뉴욕주 상원의원이 됐으니 주요 공직에 나선 지 올해로 16년째다. 퍼스트레이디 시절까지 포함하면 무려 24년이나 ‘묵은 우유’다. 그에 비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 공직 경력이 아예 없다. 숱한 논란에도 트럼프가 선전하는 이유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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