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화장실 개혁가들은 남녀 화장실의 엄격한 분리가 세상을 구원하는 양 이야기한다. 나는 지금도 대로변이든 골목길이든 태연하게 배뇨 행위를 하는 남성들을 볼 때 남녀 화장실 구분으로 범죄가 줄거나 성평등이 이루어지리라 도무지 기대할 수 없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지난 5월, 서울 강남의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두고 모든 공중화장실을 남녀 분리 화장실로 만들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남녀 분리 화장실을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법안을 제출하면서 ‘강남역 묻지마 살인 방지법’이란 별칭까지 붙였다. 서울시도 남녀 공용 화장실의 분리 설치를 적극 권고하기로 했고, 전국아동여성안전네트워크는 한발 더 나아가 공중화장실에서 일어난 범죄는 더욱 강력히 처벌하라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한편 정말 위험한 것은 남녀 공용 화장실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라는 지적의 목소리 역시 높다. 화장실에서 발생하는 몰래카메라 설치나 엿보기, 성폭행 등의 범죄는 이미 남녀 분리 화장실에서도 발생하고 있으므로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느끼는 일상적인 불편함은 남성용 입식 변기에서 나는 냄새와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배뇨 자세, 그리고 세면대를 지나쳐 손도 씻지 않고 나가는 모습 등이다. 남녀 분리된 전용화장실이라고 해도 이전 사용자의 매너와 청결 관리 상태에 따라 불편하고 불쾌하긴 마찬가지다. 안전을 중심으로 본다면 바깥 문만 닫으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모르는 이중 구조의 화장실보다는 변기와 세면대가 같이 한 칸마다 들어 있고 문을 열면 바로 밖으로 통하는 1인용 화장실이 여러 개 있는 것이 더 낫다. 이런 시스템이라면 옆 칸에 나와 같은 성별의 사람이 있든 다른 성별의 사람이 있든 상관없을 것이다. 공중화장실의 핵심이 누구나 편하고, 안전하고 그리고 위생적인 환경을 제공받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 문제를 놓고 남녀 대립적인 성별이분법에서 헤맬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성중립적인 화장실에서 출발해서 공중화장실을 어떻게 꾸미고 운영하고 문화를 만들어 나갈지를 모색하는 것이 오히려 실질적인 대안에 가깝지 않을까. 몰카나 성폭력, 살인 등의 강력 범죄가 남녀를 분리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리가 없을 테니. 지금 미국에서 ‘화장실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격렬하게 벌어지는 법적 공방도 그래서 눈여겨봐야 한다. 미국은 2010년에 트랜스젠더 학생이 대학교 화장실에서 폭행을 당하는 사건 이후로 차별 없는 화장실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성중립 화장실이란 입식 변기가 없고 출입문에 남녀로 분리된 표시 대신 어떤 젠더의 사람이든 사용할 수 있다는 표시(All-Gender)나 그냥 화장실(Rest Room)이란 단어만 표기하는 화장실을 말한다. 백악관뿐 아니라 시애틀, 뉴욕 등으로 점점 성중립 화장실이 확장되고 있지만, 성별 분리를 고집하는 곳도 만만찮다. 2015년에 텍사스주의 휴스턴에서는 인종, 민족 등 15가지 사유의 공공연한 차별을 줄이기 위한 평등조례를 제정했으나 반대 단체의 조직적 훼방으로 결국 폐지되었다. 보수 개신교인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들은 평등조례를 ‘화장실법’이라고 부르며 “Any Men Anytime”이란 구호로 비하했다. 그들은 이 조례로 인해 “아무 남자나 언제라도” 여자화장실에 들어오게 될 것이라며 대중의 공포를 부추겼다. 이 조례가 단지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자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또 2016년 4월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는 출생증명서에 기록된 성별에 따라서만 화장실을 써야 한다는 법을 만들기까지 했다. 트랜스젠더의 공중화장실 이용을 사실상 억압하는 법이다. 심지어 성적 소수자 차별 금지 조례를 아예 발의하지 못하도록 정해놓기도 했다. 공중화장실은 말 그대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누구나’에 해당하는 ‘모든 인간’에 대한 더 넓은 상상력과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화장실 개혁가들은 남녀 화장실의 엄격한 분리가 세상을 구원하는 양 이야기한다. 나는 지금도 대로변이든 골목길이든 태연하게 배뇨 행위를 하는 남성들을 볼 때 남녀 화장실 구분으로 범죄가 줄거나 성평등이 이루어지리라고는 도무지 기대할 수 없다. 하긴 2015년 교육부가 만든 성교육 교재에서는 성폭력 예방법을 ‘남녀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말라’고 제시했다. 시대 역행이다. 필요한 건 엄격한 구분이 아니라 차라리 엄격한 염치다. 차별과 혐오와 폭력을 화장실 안으로 가두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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