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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총을 내릴 용기 / 박정훈

등록 2016-08-21 18:06수정 2016-08-22 14:24

박정훈

알바노조 위원장

2014년 4월15일,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여 감옥에 갇혔다. 나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다. 국민을 위해 총을 든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은 노동자, 장애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니, 몸으로 경험하고 체험했다. 용산의 철거민들은 국가에 의해 사망했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살인적인 진압 끝에 단행한 정리해고로 20명이 넘게 죽었다. 밀양의 주민들은 국가의 명령에 의해 징집된 젊은 경찰들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당했다. 그리고 내가 감옥에 간 다음날 세월호가 침몰했다. 이들은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2016년 여름, 변한 건 없다. 국가와 기업은 경제성장을 위해 세월호는 잊어야 하며 조선업의 생존을 위해 노동자가 죽어야 한다고 선동한다. 국익을 위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도입해야 하지만, 청년들과 노동자를 위해 돈을 쓰는 건 포퓰리즘이다. 건물주의 이익을 위해 세입자들이 쫓겨나는 것은 냉혹한 세상의 법이다. 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내부의 적이 된다.

국가는 이 내부 전쟁을 수행하면서 병사들에게 마초의 총을 지급하고, 혐오의 총을 지급하며, 차별의 총을 지급한다. 이 전쟁에서 무섭다고 이야기할 수도, 도망가고 싶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 순간 탈영병이 되어 처벌받거나 애초에 군인이 될 수 없는 ‘계집애’나 ‘병신’이 되어 배제당한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반영하는 이 차별적인 용어들이 버젓이 사용되고 용인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전쟁을 수행 중인 마초들의 세계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 우리는 모두 군인이라는 것을 뜻한다.

군인이 될 수 없는 이들은 또 있다. 한반도에 전쟁이 난다고 해서 오바마와 아베와 박근혜와 시진핑과 김정은이 목숨을 걸고 참전하지 않는 것처럼 부자들과 건물주, 사장님들 역시 생존전쟁에 참전하지 않는다. 이들은 정리해고의 명단에서 빠지기 위한 전쟁을, 실업자가 되지 않기 위한 경쟁을, 자신의 가게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이해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전쟁에서 살아남는 이들은 참전하지 않는 이들이다. 도저히 건물주와 사장, 권력자, 마초가 될 수 없는 이들도 그들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지금 우리의 전쟁 같은 삶이 소수의 부자들과 권력자들을 위한 싸움이라면 도대체 누가 이렇게 열심히 살겠나. 그래서 모두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자신이 가진 작은 권력과 총을 놓아버리는 것은 체제의 전복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이 나에게 군대를 안 간 겁쟁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 같다. 최근까지도 나는 이에 대해 ‘감방 가봤어?’라는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감옥의 거친 남자들의 세계를 말하고 싶었고, 조폭과 살인자들 사이에서도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 강한 남성이라고 자랑하고 싶었다. 난 도망자가 아니라 투사라고. 그러나 지금은 다른 대답을 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복종해야 하는 것이 두렵고, 내가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훼손되는 것이 두려우며, 나로 인해 내 주변이 다칠까 두렵다. 난 약한 인간이며, 그래서 도망쳤다.

서로를 향한 총을 거둔 도망자들의 만남과 모의 덕분에 그나마 살 만한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노예가 노예를 향해, 노동자가 노동자를 향해 겨눈 총을 내리고 맞잡은 손을 들었을 때, 왕과 자본가들이 화들짝 놀라 도망간 것이 바로 우리 손으로 만든 역사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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