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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두테르테의 싸움, 개혁인가 권력투쟁인가?

등록 2016-08-31 18:11수정 2016-08-31 20:03

정의길
선임기자

두테르테의 마약과의 전쟁은 중국계를 핵심으로 하는 필리핀 과두 지배집단, 즉 올리가키와의 싸움의 첫걸음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 대가를 지금 죽어나가는 필리핀 서민들이 치른다는 거다. 필리핀 서민들은 그 희생의 대가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

마약사범은 총 쏴서 죽이라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행보를 이해하는 첫 열쇠는 그가 필리핀의 최대 민족인 비사야족 출신이라는 거다.

비사야족은 1억명의 필리핀 인구 중 33% 정도를 점하는 최대 민족이나, 주류 집단이 아니다. 7천개의 섬으로 구성된 필리핀은 지리적으로 크게 북부의 루손, 중부의 비사야, 남부의 민다나오로 나뉜다. 수도 마닐라가 있는 최대 섬인 루손에 집중된 약 2800만명 정도의 타갈로그족들이 필리핀의 주류이다. 타갈로그족들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이주해 왔다.

그중에서도 필리핀 주류의 핵심은 중국계다.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전 대통령의 모친인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은 화교인 코후앙코 가문 출신이다. 이 가문의 시조인 코라손 아키노의 증조부 호세 코후앙코는 중국 푸젠성 장저우에서 이주한 ‘허옥환’(許玉?)이다. 코후앙코란 이름은 광둥어 발음을 스페인어로 음차한 것이다. 코후앙코 가문은 코라손 아키노의 남편 베니그노 아키노 전 상원의원 가문과 함께 루손 중부 타를라크주의 양대 가문이다. 두 집안 모두 봉건영주를 방불케 하는 대지주이고, 자자손손 필리핀의 핵심 정치인이었다. 코라손과 아키노의 결혼 이전에도 두 가문은 혼맥 등으로 얽혀 있다.

코라손 아키노를 대통령으로 만든 1986년 필리핀 피플파워 혁명으로 타도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 역시 루손 북부 일로코스노르테주의 최대 가문 출신이다. 그의 집안 역시 필리핀 정계의 한 축이었다.

필리핀은 루손 출신의 이런 올리가키, 즉 과두 지배집단들에 장악된 사회다. 필리핀 진보 진영은 80년대 피플파워 혁명은 올리가키 내의 권력 이동에 불과했다고 본다. 대부분이 중국계인 필리핀 10대 부자의 총재산은 1조7천억페소(361억달러)이며, 이는 필리핀에서 유통되는 통화량 6천억페소의 두 배 이상이다. 최고 부자 헨리 시의 재산은 통화량의 73%이다.

올리가키나 루손 출신도 아니고, 기존 정당에도 소속되지 않은 두테르테의 유일한 버팀목은 대중적 인기다. 마닐라에 포진한 올리가키들을 제압하지 않고는 대통령직 수행이 불가능하다. 마약사범과의 전쟁은 올리가키를 겨냥한 그의 권력 다지기 시작이다. 그는 지난 8월3일 가난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며 돈을 버는 올리가키들을 파괴하겠다며, 그 첫 표적으로 마르코스 시절에 통상장관을 지낸 로베르토 옹핀을 찍어냈다. 옹핀이 ‘온라인 도박회사’를 운영하고, 탈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 뒤에도 그는 몇 명의 올리가키형 기업인들을 찍어냈다.

그는 재계에도 경고를 날린다. “당신들에게 경고한다. 계약직 고용을 중단해라, 안 그러면 내가 당신들을 죽일 것이다.” 임시계약 형식의 고용을 하는 필리핀 재계의 관행을 뿌리뽑겠다는 것이다. 취임 뒤 그가 반미적인 태도를 보이고, 영해 분쟁을 벌이는 중국에 유화적 태도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과 연결된 올리가키 등 필리핀 기득권층 견제용이다. 올리가키들의 태업에 대비해, 중국의 투자를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남중국해 분쟁으로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포위되는 중국 역시 필리핀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대규모 경협을 밝힌 상태다.

두테르테는 정말로 필리핀 과두 지배집단 체제를 깰 수 있을까? 필리핀을 개혁할 수 있을까? 아니면, 현재 펼치는 그의 전방위적 공세는 자신의 권력 다지기에 불과하고, 장기 독재자였던 마르코스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그는 아키노보다는 마르코스에 호감을 보이기도 한다. 아니면, 영화배우 출신 조지프 에스트라다, 글로리아 아로요 전 대통령들처럼 낙마할 것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지금 대중의 인기를 무기로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고, 그 싸움은 오래간다는 거다. 그가 이 싸움에서 이겨서 필리핀을 개혁하는 것이 자신의 진정한 목표라고 해도, 그 비용은 전적으로 필리핀 서민들이 치른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두 달 만에 숨진 2천여명은 대부분 무고한 서민이거나, 생계형 피라미 범죄자들이다.

두테르테는 지금 필리핀 서민들의 죽음을 딛고서 필리핀 개혁, 혹은 권력 다지기를 시도하고 있다. 필리핀 서민들은 희생의 대가를 돌려받을 수 있을까? 두테르테를 칭찬할 수도, 욕할 수도 없는 필리핀의 암울한 현실이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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