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았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28일부터 드디어 시행된다. 공직자와 언론, 교육계에 몸담은 사람들은 앞으로 3, 5, 10이라는 숫자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남한테 공짜로 한 끼 식사비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을 넘는 혜택을 받으면 무조건 뇌물로 간주해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뇌물의 역사는 아주 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뇌물은 인류의 중병이었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뇌물은 경계가 모호하다. 특히 선물과 뇌물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영어로 뇌물을 뜻하는 ‘브라이브’(bribe)의 어원은 자선이나 자비를 베풀 때 쓰는 선의의 금품이다. 뇌물의 앞 한자어 ‘뇌’(賂)도 옛날에 돈으로 쓰였던 조개(貝)를 사람들에게 골고루(各) 나눠준다는 뜻이다.
선물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남한테 베푸는 선의다. 선물은 뇌물의 역사만큼이나 뿌리가 깊다. 프랑스 인류사회학자 마르셀 모스는 선물 교환이 경제와 사회구조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선물은 언제든 뇌물로 변질할 수 있다. 권력과 재력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 뇌물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는 게 상책이다.
영국의 기업윤리연구소(IBE)는 받는 사람이 선물과 뇌물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 세 가지를 발표한 적이 있다. 첫째, 받고 나서 잠을 잘 수 있으면 선물이고 그렇지 않으면 뇌물이다. 둘째, 외부에 공개되었을 때 문제가 안 되는 것은 선물, 문제가 될 것 같으면 뇌물이다. 셋째, 자리를 바꾸어도 받을 수 있는 것은 선물이고, 바꾸면 못 받는 게 뇌물이다.
선물은 주는 것이고 뇌물은 받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선물이 많아지고 뇌물은 사라지는 게 더 나은 사회다. 김영란법 시행이 그런 사회로 가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박순빈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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