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4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자의 51.6%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지금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탓해선 안 된다. 기대를 배반한 대통령을 탓해야지, 기대를 가졌던 사람을 탓할 수는 없다. 우리의 기대는 모두 평등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박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은 나도 사실 간절하게 위로받고 싶다. 그런데 과연 누가 우리를 제대로 위로해줄 수 있을까? 선거가 있던 그해 1월 나는 ‘왕을 뽑는 나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우리는 구세주가 돼 달라며 대통령이란 이름의 왕을 뽑고는 5년마다 (정치적으로) 죽이고 새로 뽑는 일을 반복한다”고. 우리 정치체제는 대통령에게 실로 왕에 버금가는 권한을 준다. 대신 어마어마한 기대를 한다. 박 대통령은 아마 최악의 실패 사례로 기록될 것 같다. 기대를 감당하기에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음은 물론이고, 절대군주처럼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전횡을 했다. 나라가 산 채로 썩어버렸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선포한 ‘민주공화국’이 뿌리까지 심한 손상을 입었다. 경제개혁은 물론이고 정치개혁조차도 우선순위를 뒤로 둬야 할 만큼, 무너진 법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 긴급한 과제가 되었다. 법치에 기반을 두지 않고는 민주주의는 작동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나라를 다시 바로 세우려 한다면 먼저 박근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 그것이 헌법 정신이다. 국민은 이미 박 대통령을 탄핵했다. 국정 수행 지지도는 10% 남짓으로 추락했고, 하야·탄핵을 요구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 이제 60%대에 이른다. 세월호 사고 당일 숨겨진 7시간의 행적까지 드러난다면 민심이 어디로 흐를까? 박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그리하지 않는다면, 국회는 헌법이 정한 탄핵 절차에 착수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국회의 의무다. 여야 정당,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군의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혼란을 최소화하고 질서있게 재정비하자는 충정도 있을 테고,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며 분주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헌법 개정을 염두에 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고민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대통령이 국가 원수의 자리를 이대로 유지하는 것을 용납하는 핑곗거리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야당은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요구하고 있다. 현행 헌법상 가능한 일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그렇게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그 주장에 담긴 뜻이 의심스럽다. 대통령이 임기 중 중도 퇴장하는 ‘불행한 사태’는 막자는 것인가, 아니면 안정적으로 정권을 찾아오는 데 그쪽이 더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인가. 나는 두 가지 모두 지금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권력의 향방을 생각하기 전에, 민주공화국을 무너뜨리는 대통령이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역사의 교훈을 남기는 것이 새 역사의 출발점 아니겠는가. 의석이 부족해 탄핵이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야당이 이를 배제하는 것은 비겁하다. 야당의 소극적 태도는 박 대통령이 여전히 ‘나를 중심으로 국정 정상화’를 주장하는 데만 힘을 실어주고 있다. 난세는 정치 지도자들의 참모습을 드러나게 한다. 대의 앞에 자신을 던지는 사람과, 사욕에 눈이 먼 자를 구별하게 한다. 무너진 둑 아래서 물고기나 잡겠다는 사람들은 물살에 휩쓸려가는 걸 조심해야 한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는 나는 물살에 가담할 것이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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