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세계의창] ‘국제사회’의 죽음 / 존 페퍼

등록 2016-11-13 17:23수정 2016-11-13 19:06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지난 8일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 것에 미국인들만 깜짝 놀란 게 아니다. 국제사회에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국제사회의 죽음’이라 할 만하다. 이번에 미국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충격이 전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미국인들에게 이번 참사의 충격은 어느 때보다 크다. 영국의 유럽연합 이탈(브렉시트)도 역시 충격이었지만, 유럽연합은 심술궂은 섬나라 회원국이 없이도 지속될 수 있다.

트럼프의 ‘깜짝 당선’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세계 최강국이 외교 문제에 무지하고 지식을 쌓는 것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했다. 그는 앞으로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와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 같은 보좌관들로 둘러싸일 것이다. 평화, 인권, 그리고 지속가능한 환경과 같은 가치로 통합된 국제 공동체에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이들에게 말이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한다. ‘국제사회’에 대한 다양한 정의에 어떠한 관심도 없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성공에 낙담을 표현한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복수할 것이다. 국제사회에 대한 첫 복수로 트럼프는 이란 핵 협정을 파기할 것이다. 자신의 임기 중에 협정을 파기하는 일은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의회에 이란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부과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면 이란은 보복 조처에 나설 것이고, 핵 협정은 사실상 파기된 거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트럼프는 또 러시아 고립 정책을 거부할 것이다.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에서 강행하는 불법 정착촌 건설에 대한 국제사회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비판도 무시할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해서도 뒷걸음질 칠 것이고, 핵무기 비확산에도 악의적으로 무관심할 게 분명해 보인다.

지금까지 열거한 것은 특정한 정책적 태도들이다. 이것들이 둘 이상 합쳐지면 훨씬 심각해진다. 한때 국제사회의 주도적 조정자였던 미국은 트럼프 시대에 들어 최고 악동이 될 것이다.

미국은 혼자 힘으로 국제사회를 파괴할 수는 없다. 상당수의 열렬한 국가주의 지도자들이 트럼프를 도울 것이다. 유럽에선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와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의 프라우케 페트리 대표가 유럽연합의 기초를 허무는 데 앞장설 것이다.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자기 나라를 국제주의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몰아갈 것이다. 동시에 인종주의와 반이민주의가 전세계에 풍미할 것이다.

국제사회는 취약한 구조물이다. 세게 흔들 필요도 없다. 단 4년 동안 트럼프와 그 동맹들이 끔찍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트럼프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고르바초프도 러시아 내정을 추스르고 국제사회에 대한 의무를 거둬들이며 경제개혁에 집중하기를 원했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본의 아니게 소비에트연합에 국가주의 세력의 고삐를 풀어놓았고 소련이란 제국의 종말을 불렀다.

미국에 대한 비판자들은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미국의 영향력 해체의 첫 단계로 축하할 수도 있다. 물론 트럼프가 국제 문제에 대한 미군의 개입을 줄이거나 최소한 다른 나라에 군사 부담을 강요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나는 트럼프가 과거 미국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힘을 확장하려 할 것이라고 본다. 그는 단지 동맹국들과의 협의도 없이 예측불가능한 방식으로 할 것이다.

반면 트럼프는 국제사회를 약화하고 핵심 동맹국들을 고립시키며 지정학적 관계를 재설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그가 원하지 않았던 것, 즉 강대국 미국을 무너뜨릴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스스로 붕괴하는 것만큼 엄청난 것도 없다. 이건 연착륙이 아니다. 미국은 어쨌든 세계 경제에 의존하고 있으며, 군사력은 다른 나라들이 미국과 협력하게 만드는 데에만 유효하다. 미국은 국제사회와 불가결하게 연결돼 있다. 미국이 무너지면 국제사회도 따라서 무너질 것이다. 안녕, 도널드 트럼프. 국제사회여 안녕.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나의 완벽한 상사 [세상읽기] 1.

나의 완벽한 상사 [세상읽기]

최상목 ‘마은혁 임명’ 불복 땐 직무유기 [2월4일 뉴스뷰리핑] 2.

최상목 ‘마은혁 임명’ 불복 땐 직무유기 [2월4일 뉴스뷰리핑]

[사설] 이재용 항소심도 전부 무죄, 검찰 수사 실패 돌아봐야 3.

[사설] 이재용 항소심도 전부 무죄, 검찰 수사 실패 돌아봐야

[사설] 이재명표 실용이 ‘주 52시간’ 완화로 이어져선 안 된다 4.

[사설] 이재명표 실용이 ‘주 52시간’ 완화로 이어져선 안 된다

나르시시스트 지도자 손절하기 [뉴스룸에서] 5.

나르시시스트 지도자 손절하기 [뉴스룸에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