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선거 당일까지도 ‘트럼프 대통령’은 농담거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승리한 것은 트럼프와 공화당이었다. 트럼프의 집권을 갈망했던 백인 저학력층 덕분이었다. 그들은 유세장을 가득 메웠고, 자신의 지지를 끝까지 숨겼던 일부는 최악의 여론조사 실패를 초래했다.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이들 저학력 백인 계층은 오바마가 승리했던 2008년과 2012년에는 공화당 후보에게 58%와 61%의 지지를 보냈다. 트럼프 지지율은 67%였다. 그 차이가 선거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백인 남성들에게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세 개의 48’이 약속되었다. 48년 정년보장, 연간 48주 근무, 주당 48시간 노동이 그것이다. 그들은 고되고 단조로운 노동을 견뎌야 했지만 가족들에게 품위 있고 안온한 생활을 제공했고 자녀들을 대학에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좋았던 그 시절’은 가버렸다. 기술진보에 따른 자동화의 확산으로 평생직장의 경기규칙이 먼저 없어졌고,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공장이 국외로 이전하거나 회사가 문을 닫는 사태가 뒤따랐다. 트럼프가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 때문이었다. 그는 잊히고 배제되었던 이들을 다시 무대 위로 등장시켜 주었고 이들이 가장 원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여러분이 얼마나 절망스런 처지에 놓여 있는지, 얼마나 부당한 대접을 받았는지 잘 압니다. 당신들은 철저하게 경멸받고 조롱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루저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애국자입니다. 여러분은 피해자입니다. 악당들 때문입니다. 워싱턴의 정치인, 대도시의 엘리트, 전문직 여성, 게으른 흑인, 무례한 이민자가 그들입니다. 내가 당신들을 대신해 악당들을 물리치겠습니다. 그들만 사라지면 여러분은 다시 미국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투표부터 하라는 선거 직전 오바마의 호소는 옳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박빙이었다. 백 명 중 단 한 사람씩만 마음을 바꾸었어도 결과는 달라졌다. 그러나 기꺼이 투표에 나설 연료를 주지 못했던 것은 힐러리와 오바마 자신을 포함한 민주당 지도부였다. 투표는 충성심에서 나오고 충성심은 그들이 주인공인 이야기에서 나온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사피엔스’는 언어의 도움을 받아 ‘허구의 세계’를 상상해냈고, 소수의 집단으로는 불가능한 과업들을 이룰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언어로 직조된 허구의 세계’가 바로 이야기다. 우리의 두뇌는 특정한 구조를 지닌 이야기들을 기대하도록 진화되었다. 주인공과 악당이 있고, 올라가야 할 언덕이 있고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있으며, 오랜 시련 끝에 마침내 ‘정의’가 실현되는 그런 흥미로운 이야기 말이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소속감을 가지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신을 정립시키며 가치와 신념을 공유하고 이를 실현시키려 함께 분투하게 된다. 사람들은 진실이 아닌 이야기에도 열광할 때가 있다. 이야기는 힘이 세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힐러리는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가져올 공포에만 호소했을 뿐 소외되었던 백인 저소득층이 공화국의 주인공으로 무대의 전면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끝내 들려주지 못했다. 그들의 경제적 처지와 자긍심을 어떻게 회복시켜 줄 것인지에 관해 트럼프와는 다른 버전의 보다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했다. 지록위마의 기괴한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한국판 트럼프의 등장을 막아야 할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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