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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참 나쁜 대통령 ‘박근혜’

등록 2016-11-17 17:56수정 2016-11-17 20:50

안재승
논설위원

2주일 전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이 모든 사태는 저의 잘못”이라며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특별검사의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눈물을 글썽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담화문을 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반성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0만 촛불’ 다음날인 13일 청와대는 “어제 집회에서 나타난 민심을 매우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으며, 대책 마련에 지혜를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관저에서 거대한 민심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뭔가 느낀 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그러나 모든 게 착각이었다. 이틀 뒤인 15일 박 대통령은 ‘원조 진박’ 유영하 변호사를 내세워 뒤통수를 때렸다. 검찰 조사를 지연시키고 대면조사를 사실상 거부했다. 유 변호사는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원칙적으로 부적절하고 대통령의 동의하에 수사를 해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과 열흘 만에 또 말을 뒤집었다. 밥 먹듯이 하는 박 대통령의 거짓말에 이젠 진저리가 난다.

이어 16일엔 돌연 ‘부산 엘시티 비리 사건’을 끄집어냈다. “이영복 엘시티 회장이 천문학적 액수의 비자금을 조성해 여야 정치인과 공직자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신속 철저하게 수사해 연루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고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사정 정국을 조성해 야당과 새누리당의 비박계 의원들을 위축시켜 퇴진 압력에서 벗어나 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최순실과 함께 국정을 농단하고 국가 시스템을 붕괴시킨 장본인이 정작 자신은 검찰 조사를 회피하면서 이런 얘기를 꺼내다니 그 뻔뻔함에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일말의 염치도 없다.

지금 박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검찰 수사를 방해하고 다른 이슈를 부각한다면 국민 분노가 어느 정도 누그러질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끝까지 권력을 내놓지 않고 남은 대통령 임기 1년3개월을 다 채우겠다는 의도다. 국민의 안위나 국가의 장래는 안중에 없고, 오로지 권력에 대한 욕심밖에 없는 모습이다. 경제가 파탄 나고 외교와 안보가 무너져도 상관없다는 태도다.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참 나쁜 대통령이다. 국민이 불행하다.” 2007년 1월 대통령 선거를 11개월 남겨둔 상황에서 개헌을 제안했다고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그가 내뱉은 말이다. 다분히 정치공세적인 성격을 띤 발언이었다. 그런데 지금 박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진짜 ‘참 나쁜 대통령’이다.

참 나쁜 대통령을 상대하는 방법은 처음부터 한가지뿐이었다. 국민의 힘으로 물러나게 하는 수밖에 없다. 100만 촛불로도 정신을 못 차렸다면 500만 촛불, 1000만 촛불을 통해 국민의 결연한 뜻을 보여줘야 한다. 박 대통령이 계속 민심에 기름을 부어 폭력 사태를 유발해 반전을 꾀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그런 얕은수에 넘어갈 국민이 아니다. 야당도 더 우왕좌왕해서는 안 된다. 뒤늦게 숟가락을 얹은 처지에 잿밥에만 정신이 팔려 주판알을 굴린다면 야당 역시 역사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소한 견해 차이로 불협화음을 낼 시간이 없다. 탄탄한 공조를 바탕으로 국민의 뜻을 받들어 대통령을 퇴진시켜야 한다. 새누리당의 양심세력도 힘을 보태야 한다. 검찰과 경찰, 군의 자세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17일 후배 검사들에게 “국민의 검찰로 남을 것인지, 권력의 개로 남을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공직자가 새겨들어야 한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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