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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미국 대통령 선거의 충격 / 야마구치 지로

등록 2016-11-20 16:18수정 2016-11-20 19:05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해 전세계가 동요하고 있다. 민주주의 혹은 문명사회가 존립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들을 철저히 냉소하고,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이나 ‘이지메’(집단 괴롭힘)를 공언하는 인물이 상식적인 언론으로부터 빈축을 사면서도 승리했다는 사실은 정치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며, 그 창조주로부터 생명·자유·행복 추구를 포함한 불가침의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실제 세계는 격차와 불평등으로 가득 차 있어, ‘전제’와 현실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시민혁명을 쟁취한 사람들은 인간은 평등하다고 파악하고, 대등한 인간들이 평등하게 정치에 참여하는 틀을 만들었다. 그리고 처음엔 재산이나 교양을 가진 백인 남성만을 의미했던 ‘인간’(men)이라는 개념을 노동자와 여성, 나아가 다른 인종에까지 확장하고 자유·평등·존엄이라는 개념들을 보편화한 것이 민주주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제’의 혜택을 본 참여자들이 증가하면서 구체제의 주류파 일부가 자유와 존엄은 자신들만의 특권이라며 반발하게 됐다. 트럼프라는 인물은 이런 전제에 대한 (주류 계층의) ‘싫증’을 체현하고 있다. 거듭된 차별 발언이 그의 정치생명을 빼앗기는커녕 사람들의 욕구 불만을 해소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현재 미국 사회의 병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물론, 오키나와인들을 ‘토인’이라고 부른 경찰 발언을 옹호하는 장관이 있는 일본이 미국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트럼프 대통령이 탄생했다는 사실이 차별과 이지메를 재미있어하는 추잡한 열정을 부추기지 않을지 우려된다. ‘전제’를 부정하게 되면 민주주의는 존립할 수 없게 된다.

단순히 비판만 할 게 아니라,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선택한 사정을 생각해보는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불가결하다.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득표는 각각 5991만표와 6028만표였다. 4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밋 롬니 공화당 후보와 버락 오바마 후보의 득표는 6093만표와 6591만표였다. 이것을 보면, 이번 선거는 트럼프의 승리라기보다는 클린턴 후보의 패배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 그리고 특히 패인이 된 것은 오대호 주변의 옛 공업지대인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위스콘신 등의 패배였다. 예전에 민주당을 지지했던 백인 ‘블루칼라’층의 다수가 이번엔 기권을 택하거나 트럼프에게 투표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빌 클린턴 대통령 때부터 시작된 규제 완화와 금융 자본주의의 팽창,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을 대표로 하는 글로벌화로 인해 생산 거점이 해외로 빠져나가 제조업 부문의 안정적 고용 대신 서비스업의 열악한 고용이 늘어나고 금융위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월가로부터 거액의 헌금을 받은 힐러리가 이끄는 민주당은 더 이상 노동자의 정당이 아니게 됐다. 클린턴은 경제정책에 관해 충분히 왼쪽으로 다가서지 않았기 때문에 패한 것이다. 노동자는 대부호이긴 하지만 서민에게 다가서려는 자세를 보인 트럼프에게 투표하는 것을 통해 울분을 날려버리려 한 것이다.

물론, 트럼프 정권은 자본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펼칠 것이기 때문에 현재 ‘속이 시원하다’고 느끼고 있는 시민들은 머잖아 배신을 당할 것이다. 이후 국내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트럼프 정권은 바깥에서 적을 만드는 안이한 수법을 사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안정된 생활과 고용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선동적인 정치가에게 기대감을 갖고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 있다는 위험은 일본이나 한국에도 잠재돼 있다. 일본의 경우 이미 그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을 지킨다’는 이념을 외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인 사회경제정책을 시행하는 것도 시급한 일이다. 특히 야당의 역할이 중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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