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인류는 처음 술을 발견한 이래 지금껏, 이 액체에 ‘신비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왔다. 이 액체는 사람을 ‘사람 아닌 다른 것’으로 바꿔주었다. 비록 남들은 ‘술 취한 개’라고 욕할지라도, 술 마신 당사자는 스스로 ‘신’이 된 듯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청동기시대에는 사람을 ‘개’나 ‘신’으로 바꿔주는 또 다른 물질이 발견되었다. 이 물질은 ‘신비한 기운’과 ‘중독성’ 모두 술보다 훨씬 강했다. 고대 지중해와 남미의 도시 주민들은 이 물질 덕에 얻은 ‘집단 환각’의 경험을 신이 실존하는 증거로 여겼다고 한다. 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동시에 환락과 희열의 궁극적 경지로 몰아넣을 수 있겠는가? 마약은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주고 환각 상태에서 무한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신비의 약’이었다. 19세기 중반까지는 양귀비나 코카나무 등이 ‘천연의 신성’을 제공했다. 중국에 양귀비가 전래된 것은 당나라 때였으나,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조선 초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앵속각(=말린 양귀비 열매)이 충청도와 강원도에서 재배되는 약재로 등재되었다. 양귀비 씨앗인 앵자속을 약재로 취급한 우리나라 최초의 의서(醫書)는 <동의보감>이며, 아편 흡연에 대해서는 19세기 중반 이규경이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처음 소개했다. 아편으로 인한 해독이 사회문제로 대두하기 시작한 것은 1882년 임오군란 이후였다. 1890년대에는 아편에서 추출한 모르핀이 전래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일부 병원이 모르핀 중독 확산의 거점 역할을 했다. 1921년에는 경상북도 상주의 일본인 의사 시마모토가 조선인 통역으로 하여금 모르핀을 대리처방, 대리주사하게 했다가 발각된 일도 있었다. 오늘날의 마약은 호기심과 경계심, 동경과 경멸이 뒤섞인 심리적 혼합물이기도 하다. 이 물질은 의사의 처방에 따라 꼭 필요한 만큼만 쓰면 약이지만, 남용하면 남을 해치고 자신을 망치는 치명적인 독이다. 그렇기에 권력의 속성은 마약과 같다는 말은 진리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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