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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트럼프의 히틀러 행보

등록 2017-01-30 22:13수정 2017-01-31 09:55

정의길
선임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제질서 흔들기가 점입가경이다. 그가 내린 무슬림 국가 출신 시민들의 미국 입국 제한 행정명령은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한 1930년대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트럼프를 히틀러에 비교하는 것은 그의 인종주의적 언행과 정책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펼치는 다른 정책들도 나치의 정책을 떠올리게 하면서 2차대전 전야인 1930년대 같은 상황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폐쇄적 자국 우선주의 경제정책이다. 히틀러 역시 1933년 집권하자마자, ‘오타키’(폐쇄적 자립경제) 정책과 일자리 우선의 완전고용 정책을 펼쳤다. 국제연맹 탈퇴, 수입품에 대한 관세인상 등 수입 통제로 국내산업 보호 정책을 폈다. 경제장관인 마르 샤흐트는 외부와는 엄격히 차단된 국내 경제정책을 실시하며, 재정투입과 대규모 인프라 건설 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했다. 무엇보다 재무장을 위한 군비확장 정책을 실시해 군수산업을 팽창시켰다. 나치와 샤흐트의 경기부양과 완전고용 정책은 1939년까지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히틀러 집권 초기 30%대였던 실업률은 1939년에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런 경제적 호황은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폐쇄적 자립경제로 성장을 계속하려면, 경제권 확대가 필요했다. 이는 동유럽 등을 배타적 경제권으로 만들려는 2차대전으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및 기존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환경파괴 우려로 중지됐던 중서부 송유관 건설 재허용 및 국내 화석에너지 개발을 핵심으로 하는 국내 인프라 투자,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및 이민 제한, 불법이민 추방 등의 정책을 연일 쏟아냈다. 또 군사력 강화를 다짐하고 있다. 밖으로 문을 걸어 잠그고, 폐쇄적 경제권을 형성하려는 정책들이다.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미국인을 고용하고, 미국 물건을 사라”고 말했다. 국내 일자리 우선 정책이다. 트럼프노믹스 역시 단기적으로는 미국 경기를 부양시킬 것이나, 중장기적으로는 심각한 재정적자를 유발할 것이 분명하다. 그 이후 미국이 취할 선택에는 나치 독일처럼 전쟁이 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둘째, 트럼프가 국제질서의 세력 균형을 파괴하고 있는 점은 그런 우려를 더욱 높인다. 트럼프는 지난 15일 영국 <타임스>, 독일 <빌트>와의 회견에서 “유럽연합은 기본적으로 독일의 도구”라며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나라들도 (유럽연합을) 떠날 것이라고 믿는다”며 “난민들이 유럽 각 지역으로 계속 쏟아져 들어가면, 사람들이 이에 분노하기 때문에 유럽연합의 통합을 유지하는 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독일을 적대시하고, 유럽연합 해체를 부추기는 그의 행보는 2차대전 이후 미국 주도 국제질서의 주축인 대서양 양안 동맹의 해체를 의미한다. 중국과 경쟁하는 G2 시대에도 유럽과의 동맹은 미국 헤게모니의 초석이다.

유럽연합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을 묶어두는 장치이기도 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 통일이 다가오자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연합 출범을 앞당겼다. 단일통화 유로와 유럽연합 속에서 독일을 묶어두려는 구상이었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독일 통일을 용인하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제 유럽연합에서 영국이 탈퇴하고, 트럼프의 미국이 유럽연합 해체를 부추기는 것은 유럽 대륙에서 다시 독일이 독자노선을 추진하는 쪽으로 향하도록 하는 동력이다. 1차대전 뒤 고립된 독일은 소련과 제일 먼저 관계 정상화 조약을 맺고, 히틀러 시대에는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고는 폴란드를 분할하며 2차대전으로 치달았다.

트럼프는 지금 기존 동맹체제를 와해시키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대륙 국가들과 영국을 갈라놓고 있다. 러시아와는 관계 개선을 다짐한다. 중국과는 강도 높은 대결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의 이런 대외정책이 어떤 국제질서로 귀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트럼프 정책의 결과가 나올 때면, 국제적인 협조체제는 크게 손상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독일, 러시아, 중국 등 세계 주요 플레이어들은 각자도생의 길로 달려나가고 있을 것이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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