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납치사건 뒤 대학가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던 1973년 10월19일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던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가 숨졌다. 고문사로 판단한 도널드 그레그 미국 중앙정보국 서울지부장은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을 만나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자국민을 고문하는 조직과 함께 일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따졌다. 며칠 뒤 부장 이후락이 전격 경질됐고 새로 온 신직수는 고문 금지를 지시했다고 그레그는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에서 주장했다. 그러나 1975년 그레그 이임 직후의 ‘11·22 사건’을 비롯해 신직수 부장-김기춘 대공수사국장 체제에서도 재일동포 등 간첩 사건들이 줄줄이 터졌고, 40년 뒤 재심에서야 고문에 의한 조작임이 밝혀졌다. 1990년대 민주정부 출범 때까지 고문 조작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2001년 9·11테러 6일 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중앙정보국(CIA)이 테러용의자를 비밀감옥에 가두고 마음껏 심문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정보국은 아프간 타이 폴란드 루마니아 등에 비밀감옥을 직접 운영했고 파키스탄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 우즈베키스탄 등의 정보기관에는 ‘고문’을 하청주었다. 2014년 12월 상원 정보위가 공개한 ‘중앙정보국 고문 실태 보고서’에는 이틀간 65차례 물고문, 180시간 잠 안 재우기, 가로 53㎝ 세로 76㎝의 상자에 감금하기 등 비인간적 고문 사례가 줄줄이 등장한다. 오바마는 2009년 1월 취임 사흘 만에 고문이나 잔혹한 처우를 금지하고 비밀감옥을 폐쇄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나, 국외에서도 적용된다는 방침을 공식 확인한 것은 2014년 11월이 되어서였다.
40년 전 고문의 주역 김기춘씨가 다른 혐의로 법의 심판대에 올랐으나 숱한 반인륜적 고문 범죄자들 단죄는 시효 만료를 이유로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의 ‘물고문 부활’ 주장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특검에 소환되는 김기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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