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승
논설위원
“이게 정부냐!” 구제역에 대처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무신경·무능력·무책임, 그 자체다. 구제역 바이러스보다 정부가 더 걱정스러운 이유다.
농림축산식품부는 5일 충북 보은 젖소농장에서 올겨울 들어 첫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나오자 “구제역 특별방역대책 기간(2016년 10월~2017년 5월) 운용을 통해 백신 항체 형성률을 높게 유지하고 있어 전국 확산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기준 소의 평균 항체 형성률이 97.5%로 기준치인 80%를 훨씬 넘는다고 했다. 또 “긴급 백신 접종 등에 대비해 충분한 재고량 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97.5%는 전수조사가 아닌 표본조사 결과였고 표본이 너무 적어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소를 키우는 9만8천여 농가 가운데 6900곳을 표본으로 추출했다. 7%다. 마릿수로 따지면 더 줄어든다. 전체 330만마리 중 0.7%인 2만7천마리를 조사해놓고 항체 형성률이 97.5%에 이른다고 발표한 것이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농식품부는 7일 브리핑에서 “표본이 적어 오차가 있다고 본다”고 인정했다.
9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한 축사에서 연천군청 소속 공공 수의사들이 소들에게 구제역 백신 주사를 놓고 있다. 연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정부는 또 혈액 검사를 통해 구제역 발생 농가의 항체 형성률이 5~19%로 나오자, 책임을 축산농가의 ‘도덕적 해이’ 탓으로 돌렸다. 축산농가가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으면서도 했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접종 방법이 잘못됐으면 정부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사육 소가 50마리 이상인 농가는 대형 농장이라는 이유로 농장주가 직접 백신을 접종하고, 50마리 이하는 정부가 파견한 공공 수의사가 접종한다. 두 번째로 확진 판정을 받은 전북 정읍의 한우농가는 “축협에서 백신을 수령해 설명서에 나온 대로 접종을 했는데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실제로 구제역 발생 농가 주변의 농장들을 조사한 결과, 공공 수의사들이 접종한 소들도 일부는 항체 형성률이 기준치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살처분을 해도 최대 80%까지 보상해주는 현행 제도가 ‘방역 불감증’을 부른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축산농가들은 “살처분 보상비를 믿고 전 재산인 소를 위험에 빠뜨릴 바보가 어디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설사 백신 접종을 소홀히 하는 농가가 일부 있더라도, 이를 관리·감독해 구제역을 예방할 최종 책임은 정부에 있다. 이 역할을 부인하고 축산농가에 책임을 돌리는 정부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황당한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농식품부는 8일 브리핑에서 “97.5%는 백신 접종으로 구제역 항체가 생긴 소의 비중을 말하는 게 아니다. 농가들이 얼마나 정부의 백신 정책을 수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에 가깝다”고 털어놨다. 표본으로 추출된 농장에서 사육 규모와 관계없이 1곳당 1마리를 골라 문제가 없으면 농가 전체가 안전한 것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그 1마리를 농장주가 직접 골랐다.
그리고 9일 결정판이 나왔다. 이날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도 연천의 젖소 바이러스 유형이 A형으로 확인됐다. 앞서 확진 판정을 받은 보은과 정읍의 구제역 바이러스인 O형과 달랐다. 정부는 A형에 대응할 백신 물량이 부족하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O형이 주로 발생해 A형에 대한 대비에 소홀했던 것이다. 정부는 O+A형 백신을 영국에서 긴급 수입하기로 했다. 지난해 백신 접종에 모두 1천억원 가까이 들어갔는데, 결과적으로 헛돈을 쓴 셈이 됐다. 훗날 박근혜 정부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최악의 정부로 기록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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