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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트럼프는 정말 러시아에 발목을 잡혔나

등록 2017-02-15 18:03수정 2017-02-15 21:14

트럼프의 러시아 편애는 반중국 미-러 협력체제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세계 지정전략 대전환이라는 가설이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훼손하기에는 너무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트럼프가 러시아에 발목을 잡혔다는 음모론이다.
정의길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과 러시아 관계를 혁신하려는 이단아인가, 러시아에 약점을 잡힌 볼모인가?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러시아 쪽과 부적절한 접촉으로 낙마하자, 트럼프 행정부의 대러시아 관계를 둘러싼 논란과 의혹이 더 짙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줄곧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밝혔다. 모든 사람을 욕하면서도, 유독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는 비판조차도 거부하고, ‘스마트 가이’(똑똑한 사람)라고 높게 평가한다. 트럼프는 “왜 러시아와 사이좋게 지내면 안 되냐?”고 반문한다. 단지, 러시아와 협력해 시리아 내전 등 중동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 동기에 대해서는 추측과 가설만 무성하다.

먼저, 지정적 전략 관점의 가설이다.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해서,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 세계 지정전략의 대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1970년대 초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대중 화해를 통해, 반소련 미-중 연대를 일궈냈다. 이제 중국이 미국의 가상 주적이 되자, 반중 미-러 협력을 구축하려는 것이 트럼프의 대외정책 주축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줄곧 중국을 때리고 러시아를 옹호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맹점이 있다. 닉슨의 대중 화해 정책이 성공한 배경은 당시 중-소 분쟁이었다. 지금 중국과 러시아는 관계가 개선됐고, 서로 의존한다. 러시아 최대 수출품목인 석유와 가스의 대중국 수출은 두 나라에 안정적인 수입과 에너지 확보를 보장한다. 냉전 시절처럼 두 나라가 긴 국경선에서 대치하는 것은 서로에게 엄청난 부담이다. 특히 이 경우에 러시아는 소련 시절의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을 놓고 중국과 치열한 영향력 싸움을 벌여야 한다. 러시아가 자신에게 유화적인 미국이 절실하기는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를 훼손하기에는 그 비용이 현재로서는 더 크다.

무엇보다도, 미국이나 서방에서 반중 미-러 협력체제 구상을 말하거나 지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근본적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이해가 국제무대에서 어긋나기 때문이다. 푸틴 이후 러시아는 체첸 내전 진압,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 공화국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조지아 전쟁, 동유럽에서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구축 반대,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 이란과의 관계 개선, 시리아 내전 개입의 길을 걸어왔다. 동유럽과 중동에서 러시아의 영향권 확대이다. 미국 등 서방이 주도하는 옛 소련 영내까지로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확장에 맞서는 방어적 팽창이기도 하지만, 제국 시대 이후 러시아가 추구해온 노선이다. 러시아의 이런 팽창 노선은 동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에 갖는 역사적인 안보 공포를 부활시켰다. 유럽연합을 주도하는 독일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이 유럽 안정과 안보를 위해 반드시 대처해야 하는 역사적인 숙제이기도 하다.

미국의 세계 패권에서 주축인 대서양 양안 동맹의 한편인 유럽 동맹국을 살피는 것은 미국 대외정책의 제일 상수이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대러시아 제재가 유지돼야 한다는 영국 정부의 의지를 관철했다고 <가디언>이 보도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러시아와 협력을 통한 중동 문제 해결도 실효성이 의심된다. 러시아가 중동 분쟁 해결에서 미국에 줄 수 있는 건,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서 무력 지원 정도인데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러시아는 트럼프 정부가 노리는 이란 정권과의 관계가 더 절실하고 현재 순항 중이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음모론이다. 이미 트럼프가 사업가 시절 모스크바 호텔에서 부적절한 행태를 벌인 증거를 러시아가 확보했다는 영국 정보기관 MI6 출신 정보요원의 사설 정보보고가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었다. 그 여진이 꺼진 것도 아니다. <시엔엔>은 지난 10일 미국 정보기관들이 그 사설 정보보고의 일부를 확인했다고 정보기관 관리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트럼프의 러시아 방문 때 트럼프 주변 인사와 러시아 관리들의 접촉 증거는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러시아에 발목을 잡혔다면, 공개적으로 러시아와 푸틴을 변호하기보다는, 소리 없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증진해야 한다. 트럼프는 러시아와 푸틴에 대한 사랑을 너무 떠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러시아 수수께끼는 트럼프와 그 행정부의 불확실성, 트럼프 시대 미국 대외정책의 예측 불가성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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