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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소수의견 / 박정훈

등록 2017-03-12 16:46수정 2017-03-12 19:07

박정훈
알바노동자

3월10일 오전 허름한 식당에서 텔레비전을 끄네 마네 실랑이가 붙었다. 하루 종일 똑같은 말만 한다며 시끄럽다는 식당 주인과 탄핵 순간만큼은 꼭 보고 싶은 손님의 다툼이다. 계란말이에 젓가락을 옮기면서 주인장에겐 공감을, 손님에겐 응원을 보내며 화면을 응시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세월호 대목에서 밥알이 목에 걸렸다.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없으나,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탄핵심판절차의 판단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입니다.’ 반면,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유 침해는 인용됐다. ‘피청구인의 행위는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입니다.’

우리가 수호한 헌법은 정작 누구를 지키는 것일까. 헌재는 성실 여부가 추상적이라 판단할 수 없다 했다. 대통령과 달리 국민들은 매일 얼마나 성실하게 일하는지를 평가받고 탄핵 같은 복잡한 절차 없이 해고된다. 반면 기업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탄핵되지 않는다. 이제 국가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엘지(LG)유플러스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19살 노동자가 업무스트레스로 자살했다. 회사는 ‘세이브(SAVE) 부서가 가장 힘든 부서는 아니라고 본다’고 해명했다. 회사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자살할 정도로 힘든 일은 아닌데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는 말일 것이다. 살아 있을 땐 임금을 받을 자격을 묻더니, 사망 후엔 죽음의 자격을 묻는다. ‘세이브’는 고객의 해지신청으로부터 회사를 구하는 일이다. 노동자는 소비자에게 맞서 엘지유플러스를 방어하지 못하면 인센티브를 받지 못한다. 손님과 노동자의 전쟁 속에 회사는 살고 노동자는 죽는다.

지난해 12월엔 경산의 씨유(CU) 편의점 노동자가 살해당했다. 손님에게 ‘안녕하세요 씨유입니다’라고 인사하지만, 죽는 순간 씨유가 아니라 가맹점 노동자가 된다. 본사는 알바가 일해서 만든 매출을 가져가지만,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가져가지 않는다.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이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지만 이재용은 책임지지 않는다. 여성혐오범죄, 성소수자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국가마저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는데, 국민은 도대체 누구에게 보호받을 수 있을까.

그래서 헌재의 보충의견에도 불구하고 탄핵 판결문에 빠진 소수의견을 적고자 한다. 세월호의 304명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국민들의 삶과 존엄이 대통령 탄핵 이유다. 판결문에 빠졌지만 광장에 새겨진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등 다양한 목소리와 존재가 우리가 읽어야 할 소수의견이다. 물론, 이 소수의견은 앞으로도 판결문에 인쇄될 수 없을 것 같다. 진정한 헌법의 가치는 헌재가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은 헌법의 통치를 받는 헌법 안의 피지배자이자 헌법을 만드는 헌법 밖의 지배자다. 헌재는 법리라는 작은 틀로 국민의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일 뿐이다.

지난날 거리에서 촛불로 새겼던 수많은 소수의견이 오늘의 다수의견을 만들었듯이 지금의 다양한 삶과 존재들이 소수의견들로 기록되고, 내일의 다수의견이 되기를 바란다. 이런 소수의견을 남기는 것은, 5월9일의 대통령이 박근혜보다 나은 대통령이 아니라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수호하고 싶은 헌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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