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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풍선은 계속 누르면 터지고 만다

등록 2017-03-23 18:20수정 2017-03-29 17:57

안재승
논설위원

풍선 안에 들어 있는 공기의 양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불룩 튀어나온다. 이른바 ‘풍선 효과’다. 복잡다기한 문제를 단선적으로 접근하면 또 다른 문제를 낳아 일이 더 꼬일 수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지난 19일 ‘제2금융권 건전성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저축은행, 상호금융, 카드사, 캐피털사 등 제2금융권에 대해 충당금 적립률 기준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또 적용 시기도 애초 내년 1월에서 올해 2분기로 6개월 이상 앞당겼다. 충당금 적립률을 올리면 대출 총량이 줄어들게 된다. 한마디로 제2금융권의 대출을 바짝 죄기로 한 것이다.

서울의 길거리에 널려 있는 사채 광고 전단지.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의 길거리에 널려 있는 사채 광고 전단지. 한겨레 자료사진
최근 은행은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한 반면, 제2금융권은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한국은행의 ‘2016년 4분기 가계신용 통계’를 보면, 지난해 4분기 은행의 가계대출은 13조5천억원 늘어난 데 비해 제2금융권은 그보다 2배 이상 많은 29조5천억원 증가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대 규모다. 이런 추세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1~2월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조6천억원 증가했다. 은행의 증가액 3조원을 훨씬 웃돈다. 가계대출이 제2금융권으로 몰리고 있는 것은 정부가 은행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지난해 2월부터 ‘여신 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은행이 대출 심사 때 상환 능력 등을 꼼꼼히 따지기 시작하자 자격 요건이 안 되는 저소득 근로자나 영세 자영업자 등 채무 취약계층이 제2금융권으로 대거 이동했다.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최대 리스크 중 하나다. 정부가 가계부채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돈 들어갈 곳은 많고 소득은 늘어나지 않아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 은행 문턱만 높이는 것은 제대로 된 정책이라 할 수 없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제2금융권마저 문턱이 높아지면 취약계층은 대부업체나 사채업자를 찾아갈 것이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다. 돈을 빌리기도 어렵지만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대부업체의 법정 최고금리는 연 27.9%이다.

2014년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서 정부는 ‘빚내서 집 사라’며 대출 규제를 풀었다. 은행도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가계대출을 늘려 재미를 짭짤하게 봤다. 그런데 사고는 함께 저질러놓고 이제 와서 정부와 금융기관은 쏙 빠진 채 뒷수습은 가계가 알아서 하라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이 금리 인상에 본격적으로 돌입해 앞으로 이자 부담이 더 커질 것이다. 이대로 가면 360만명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2003~2004년의 ‘신용카드 대란’과 같은 사태가 재현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2004년 경제부총리로 긴급 투입돼 신용카드 대란을 진화한 이헌재 전 부총리가 며칠 전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 출판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가계부채를 금융 관점의 규제로만 해결하려면 ‘밀어내기’가 된다. 은행에서 밀어내면 저축은행, 저축은행에서 밀어내면 대부회사, 대부회사에서 밀어내면 신용불량자 양산으로 터지게 된다. 현재의 가계부채 문제는 주택, 자영업, 저임금 문제를 상정해 거꾸로 풀어나가려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빚내서 집을 살 수밖에 없는 주거난, 경기침체 장기화로 인한 실질소득 감소, 고용 사정 악화가 불러온 영세자영업의 과당경쟁 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가계부채 문제는 풀 수 없다는 것이다. 정책 당국자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지적이다.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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